
우리는 역사 교육으로 수많은 위인을 알고 있다. 역사에서 기득권을 잡은 주류가 보여주는 대로 본다고 할 수 있다. 역사 이면에 흐르는 진실은 참된 학자가 애써 찾아서 밝혀야 표면과 이면에 나타난 역사의 실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널리 알려진 친숙한 위인이다. 퇴계보다 13살 아래고, 율곡보다 21년 연상인 穌齋(소재)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은 퇴계와는 다른 학설로 맞섰고, 율곡이 믿고 따르며 존경했다.
이황은 선한 마음 四端(사단)과 악할 수 있는 마음 七情(칠정)은 출처가 다르다고 해서 心(심)을 둘로 보았다. 이를 마땅찮게 여긴 노수신은 마음의 體(체)는 道心(도심)이고 用(용)은 人心(인심)으로 心(심)은 같다고 했다. 율곡 李珥(이이)는 노수신을 따라 人心(인심)이나 道心(도심)은 다 같은 마음이며 지향점이 다르다는 반론을 펴서 善惡(선악)은 출처가 아니라 지향점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동기보다는 결과를 중시한 획기적인 사고 전환을 이룩했다.
조동일은 근래에 <대등생극론>이라는 책을 내고 노수신을 만나, 노수신은 이미 500년 전에 만인대등은 만생대등에서, 만생대등은 만물대등에서 이루어진다는 자기의 논리를 밝혔다고 했다. 노수신이 다시 조동일로 태어나 미진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 역사에서 한동안 훈구파가 사림파를 억압했다. 이때 이황은 그 수난을 물러나 피하려 했으나, 노수신은 정면으로 당해 19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했다. 이황은 성현을 존숭해 마음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노수신은 자득의 이치로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귀양살이를 하면서 더욱 분발했다.
분발의 양상을 살펴보면 名山大刹(명산대찰)을 찾아가 웅대한 기상으로 마음을 씻고, 善知識(선지식)을 만나 슬기로움을 겨루었다. 양명학을 탐구해 유가 도학의 편협함을 타파하고 더 넓은 시공으로 나아갔다. 현재의 山水(산수), 木石(목석), 天海(천해)에서 마음을 씻고 만물대등의 크나큰 이치를 깨닫고 실행했다.
고고한 만물대등에서 내려와 만생대등을 살폈다. 사람에게 종속되어 이용당하기만 하다가 죽는 가축이 자기와 대등하고, 가축뿐만 아니라 다른 금수, 미물이라고 하는 곤충까지도 사람과 대등하다는 깨달음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더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온전하게 실행했다.
노수신의 詩文(시문)은 이미 당대에 높이 평가되었다. 표현이 각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사는 보람을 얻는가 고심하며 바른길을 찾은 것이 마음을 깊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생쥐의 경망스런 행동에서 생명의 발랄함을, 먹물 묻은 발로 성현을 마구 모독하는 데서 天眞(천진)의 발로를 드러낸 ‘생쥐’라는 시를 감상해 보자. 생쥐가 성현을 욕보이는 데서 만생대등 만인대등의 철학이 피어난다. 요약이면서 상징인 시는 거대한 철학을 품고 있어 미욱한 소견을 툭 트이게 한다. (<문학으로 철학하기>,124~144)
생쥐〔鼷(혜)〕라
仰嗅燈檠後(앙후등경후)하다 : 머리 쳐들고 등경 뒤쪽을 냄새 맡다가
遙緣食案邊(요연식안변)을 : 멀리 밥상 가를 타고 다니기도 하네
今能翫吾睡(금능완오수)하여 : 요즘은 내가 잠을 잘 이룰 수 있어
不復顧其穿(불부고기천)을 : 그놈이 벽 뚫는 것도 본체만체했더니
歷硯沾涓滴(역연첨연적)하여 : 벼루를 지나다 먹물에 젖어 가지곤
翻書汚聖賢(번서오성현)을 : 책장을 뒤집어 성현을 더럽히네.
翛然笑無語(소연소무어)하니 : 조용히 앉아서 말없이 웃노니
爾命亦由天(이명역유천)을 : 네 명 또한 하늘에 달려 있겠지.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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