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전거, 친환경인가 전자 폐기물인가

2025-06-13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전기자전거가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기 모터의 힘을 빌려 더 쉽게,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전기자전거는 특히 자동차 이용을 대체하며 도시 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자전거가 새로운 전자 폐기물(e-waste) 문제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전기자전거가 폐기될 때 가장 큰 환경적 문제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처리다. 배터리는 잘못 폐기될 경우 화재 위험이 높고,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킬 수 있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전기자전거는 외형이 점점 일반 자전거와 유사해지면서, 전자 폐기물로 분류되지 않고 일반 금속류로 잘못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로 인해 폐기물 처리 시설에서 배터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파쇄하는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아일랜드 리머릭 대학교 환경과학과 이본느 라이언(Yvonne Ryan) 조교수는 더컨버세이션에서 저품질의 온라인 전기자전거 유통과 짧은 제품 수명이 전자 폐기물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부품 표준화가 미비하고, 수리나 재사용이 어려운 설계가 많아 빠르게 폐기되는 구조적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핵심 해법으로는 수리가 쉬운 제품 설계와 부품 표준화가 강조된다. 다양한 브랜드와 모델 간 부품 호환성을 높이면, 부품을 폐기하지 않고 재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유럽연합(EU)은 이를 위해 '제품 여권'과 QR코드를 활용해 제품의 전체 수명 주기를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전기자전거는 2024년에 도입된 EU 지속 가능 제품 규정의 우선 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아쉬움을 남겼다.

3D 프린팅 기술 역시 부품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된다. 적층 제조 기술을 활용하면, 수리업체와 소매점이 간단한 부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어, 부품 조달이 어려운 지역에서도 빠르게 수리할 수 있다.

최근 전기자전거 업계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공유, 회원제, 대여를 통한 '제품 소유'에서 '서비스 이용'으로의 전환이 활발하다. 일부 기업은 정기적인 유지보수와 모바일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보쉬(Bosch), 시마노(Shimano) 같은 제조사는 전문 수리 플랫폼을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 접근성 확대를 위한 '구매 전 시승 프로그램'과 리퍼비시(재생) 전기자전거 판매를 장려하는 정책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그러나 농촌이나 소도시처럼 수리망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접근성의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는 제조사들이 '수리할 권리'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소비자들이 수리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주별로 배터리 재활용 프로그램을 운영, 대형 모빌리티 기업이 자체 재활용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기자전거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수리·재사용을 선택할 권리와 정보를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공유 전기자전거 관리 지침을 강화하고, 노후 자전거 배터리 회수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전기자전거 배터리 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관리 체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 회수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자동차 폐배터리처럼 전국 단위의 의무적 회수·재활용 시스템은 아직 부재하다.

전문가들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를 전기자전거까지 확대 적용하고, 수리·재사용 인센티브, 리퍼비시 제품 지원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새 제품 구매를 장려하는 보조금 정책이 오히려 환경 부담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자전거는 기후 위기 시대에 중요한 교통수단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친환경 모빌리티가 전자 폐기물 문제를 동반한 '그린 워싱' 수단이 되지 않도록, 제품의 전체 수명 주기를 고려한 정책과 소비자 중심의 접근이 시급하다. 더 오래 사용하고, 더 쉽게 수리하며, 더 효율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순환 경제 시스템이 전기자전거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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