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체 연구 20년…불 안 나고 멀리 가는 전기차 시대 연다

2025-06-12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82〉 솔리비스 신동욱 대표

‘좋은 건 알겠는데, 불 안 나고, 주행거리 긴 전기차는 없을까.’ 전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도, 타고 싶은 사람도 간절히 원하는 바다. 지난해 8월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전기차 화재는 물론, 전기차 사고로 불이 났는데 운전자가 탈출하지 못해 죽었다는 소식까지….

가끔 들리는 전기차 재난·사고 뉴스는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현재 전기차의 에너지원인 액체 전해질 리튬이온 이차전지는 장점만큼 단점이 크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전고체(All-solid-state) 전지’가 21세기 전기차 시대를 혁신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액체 전해질 리튬이온 전지와 비교해 화재위험이 낮고 주행거리가 긴 데다 추위에도 강하기 때문이다. 신동욱(60) 한양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전고체 전지 연구와 상용화의 선두주자다. 전고체가 주목받지 못했던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연구를 해왔다. 2020년엔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전고체 전지 소재를 만드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경기도 하남에 본사를 둔 솔리비스다. 지난달엔 강원도 횡성에 연간 42t 규모의 고체 전해질 생산공장까지 준공했다. 이차전지 소재 생산공장으론 작은 규모지만, 고체 전해질로만 보면 국내 최대 규모다. 양산 개념이 들어간 파일럿 공장인 셈이다. 여기서 생산한 고체 전해질은 국내외 자동차 회사로 이미 납품되고 있다. 지금은 주로 테스트용이지만, 일부는 제품 생산용 파일럿 공정에도 투입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50억원, 내년에는 400억원대로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조만간 본격적으로 열릴 전고체 전지 시장을 위해 제2, 제3 공장을 지어 점차 생산 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올해 200억원 정도를 추가로 유치한 다음 내년 가을쯤 상장(IPO)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하남 솔리비스 본사에서 신 교수를 만났다.

전고체 배터리 소재 선두주자

액체 전해질 전지 단점 극복해

현대차와 공동연구하다 창업

기술력으로 투자 빙하기 뚫어

이차전지 산업 미래는 전고체

전고체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원래 전공은 광소재였다. 삼성전자에서 광통신과 광학소자 관련 일을 하다가 1998년 한양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 연구주제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기존에 경험했던 황화물 소재가 이차전지의 고체 전해질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렇게 만든 전고체 전지는 기존 액체 전해질 리튬이온 전지와 달리 안전성이 뛰어났다. 물론 당시에는 전고체 전지가 학술적 연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상용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소재의 특성과 미래 이차전지 산업의 방향성을 분석한 결과, 앞으로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언제부터 왜 창업을 생각하게 됐나.

“처음에는 대학교수로 연구 자체에 집중했지만, 기업과 공동연구 과정에서 특허나 기술적 권리가 사실상 기업 쪽으로만 귀속되는 현실을 알게 됐다. 명목상으로는 대학과 공동소유지만, 실제로는 권리 행사나 로열티 등 사업적 활용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였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성과와 권리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결국 창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2020년에야 전고체 가능성 인정받아

창업이 좀 늦은 편 아닌가.

“1998년에 교수로 임용됐지만, 창업은 2020년에 했으니 꽤 늦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전고체 전지 분야는 오랫동안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으로 전기차 산업이 급성장하고,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 측면에서 전고체 전지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2019년에 국내 대기업들도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면서 자본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다. 그러니까 창업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갖춰진 시점이 2020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투자받기 어렵지 않았나. 최근 투자시장 분위기는 어떤가?

“최근 수년간 투자 시장이 긴축국면에 있긴 했지만 전고체 기반 이차전지 소재처럼 미래 성장성이 확실한 분야엔 여전히 자금이 몰리고 있다. 특히 솔리비스처럼 기술력이 독보적이면, 시장 불황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리비스만의 경쟁력은.

“2000년대 초부터 전고체 전지와 고체 전해질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해, 20년 넘는 노하우와 특허를 축적해 왔다. 특히 초기에는 국내에서 전고체 전지를 연구하는 교수가 거의 없었고, 세계적으로도 연구자가 매우 적은 분야였다. 나는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을 실제 이차전지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오래전부터 검증해 왔고, 현대자동차와 10년 가까이 협력하면서 기업용 연구개발 경험과 실전 데이터를 확보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전고체 전지 관련 핵심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현대차와 초창기부터 전고체 전지 연구를 함께 해왔고, 이후 자체적으로도 연구개발과 특허를 축적해 왔다.”

한국·일본이 경쟁하고, 중국은 추격

교수로서 할 일도 많을 텐데.

“회사 대표로서 일하면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데 솔직히 힘들다. 강의야 두 과목만 하면 되지만, 연구까지 챙기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창업 이후론 더 이상 대학원생을 받지 않고 있다. 지금은 박사 과정 학생 3명 정도만 남아있다. 요즘 다른 교수들은 창업한 뒤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남고 제자가 CEO(최고경영자)를 맡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회사 일에 전념하려면 결국 교수직에서 물러나는 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이제 나이 60이고, 정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점도 있다.”

전고체 전지 분야의 국가 간 경쟁력을 어떻게 보나.

“전고체는 일본이 가장 앞서 있다. 도요타는 약 40년 전부터 도쿄공업대 등의 교수들과 협력해 전고체 전지 원천 연구를 시작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소재 성능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2011년 기술적 돌파구가 열렸고, 그 뒤로 일본 학계와 산업계가 전고체 전지 개발을 주도해왔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늦게 본격화됐다. 나는 2000년대 초부터 전고체 전지 연구를 시작했지만, 산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 같은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섰고, 현대차도 관심이 지대하다. 전고체 전지 시장 초기 단계인 현재 한·일 중심으로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원천 기술, 한국은 빠른 상용화 개발 쪽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가고 있다고 본다. 중국은 한국·일본보다 뒤처져있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인 투자로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

솔리비스의 비전을 말해달라.

“솔리비스는 고체 전해질 핵심 소재를 국내 최초로 양산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주요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횡성 공장을 향후 제2·제3 공장으로 확대해 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 전지 3사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사들에도 안정적이고 대규모 공급이 가능해진다. 글로벌 전고체 전지 생태계의 중추적 공급사 역할을 목표로 한다.”

안진호 한양대 연구부총장

“전고체 전지는 고체 전해질을 사용해 구조적으로 안전성이 높다. 아직 상용화까지 기술적 과제가 많지만, 에너지 산업의 판도를 바꿀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신동욱 교수는 국내에서 최초로 연구를 시작해 꾸준히 이어왔고, 한양대 또한 전략적으로 지원해 왔다. 솔리비스는 이런 연구의 결실이자, 대학 기술창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김광수 GB벤처스 전무

“솔리비스는 단순한 소재 국산화를 넘어, 전기차 안전성과 소비자 편의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전고체 전지 핵심소재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학계와 산업계를 두루 경험한 대표와 핵심 기술진의 사업화 역량 및 기술적 전문성뿐만 아니라, 시장과 투자자의 관점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사업가적 태도까지 갖춘 점이 돋보인다.”

◆‘혁신창업의 길’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창업 대한민국(SNK) 포럼’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합니다. SNK포럼은 중앙일보ㆍ서울대ㆍKAIST를 중심으로, 혁신 딥테크(deep-tech)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이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기반한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 이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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