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끝나니 당 연락 끊기더라" 헌신짝 된 헌신 당원들 [유권자 25% 당원시대]

2025-11-06

“신영대! 신영대!” “윤준병!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 선출을 위한 임시 당원대회가 열린 지난 2일 전북 전주 전주대 JJ아트홀 앞에 파란색 점퍼를 입은 당원들이 도열했다. 저마다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이로 당원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당원들이 줄줄이 입장했다. 정청래 대표가 나타났을 땐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당원들이 길게 줄을 섰다. 현장에서 만난 당 관계자는 “대부분 내년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라고 귀띔했다.

2001년 입당해 25년째 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김용완(60)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동원’을 위해 모집된 당원이었지만, 이후에는 지역 여론이나 공약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효능감은 크지 않았다. 김씨는 “우리 같은 진성당원을 풀뿌리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위로부터 어떠한 피드백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가 6·3 지방선거에 기초의원 후보로 직접 출마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정당의 근간인 풀뿌리 당원이 정작 정치 무대에서 소외되고 있다. 김씨를 포함해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한 8명의 민주당·국민의힘 권리·책임당원 다수는 “선거 때만 찾는 존재”라고 자조했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대면 활동으로 길어 올린 밑바닥 민심보다는 온라인상의 여론몰이와 정쟁이 더 주목받는 게 현실”이라는 데 공감했다.

2011년부터 영남의 한 국민의힘 당원협의회에서 활동하는 책임당원 송모(57)씨는 “정치 하는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정치를 하는 건지, 자기 권력의 안위만을 위해서 하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책임당원 정종숙(76·광주광역시)씨는 “우리는 잘 난 사람이 와도 10% 이하, 저쪽(민주당)은 허수아비를 세워 놔도 70% 이상인 곳이지만 누구보다 열렬히 선거운동을 해왔다”며 “그런데 선거가 끝나면 다들 연락이 끊기고 누군지도 모른다. 당협위원장에게서 커피라도 한 잔 얻어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민주당 권리당원 홍기정(55·광주광역시)씨도 입당한 지 9년여가 지났지만 “이곳 정치인의 90% 이상은 당원을 풀뿌리 민주주의 주체보다 선거 때 동원되는 숫자로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의 소외감은 온라인 강성 당원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심화하고 있다. 3년 차 민주당 권리당원인 서은주(36·전북 임실)씨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여론몰이나 정쟁이 주목을 받을수록 진짜 민생 이슈는 관심을 잃는다”고 토로했다. 5년 차 민주당 권리당원인 박성균(40·경기 부천)씨도 최근 빈번하게 나타나는 온라인 당원의 과격한 주장이나 ‘문자 폭탄’에 “그들이 모든 당원의 대변인인 것처럼 비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5년 차 국민의힘 책임당원인 이윤규(28·충남 아산)씨는 “특정인을 좌표 찍어서 ‘문자 폭탄’을 보내는 것은 일종의 ‘불링(bullying·괴롭힘)’이자 야만의 방식”이라고 했다.

거대 양당은 최근 당원 주권주의를 표방하지만, 당내 선거 과정의 투표권 강화에 치중돼 있을 뿐 대의기관으로서의 당원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지역 당원의 활동은 주민 민원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무는 게 현실이다. 14년 차 국민의힘 책임당원 정모(38·대구)씨는 “지역 현안의 경우 기초의원들에게 의견을 먼저 전달하는데, 구두로만 전달하면 80~90%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생생한 의견보다는 형식에 치중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했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정당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정교화해 표현할 수 있는 경로는 전혀 없다. 온라인에서 감정을 쏟아내는 수준”이라며 “당원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공식 조직을 만드는 등 정당 스스로 자구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럽에서 정당의 위기를 연구해 온 데이비드 파렐 아일랜드 더블린대 교수는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개별 당원은 정당이 정치체계 내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며 “정당 내부에 숙의적 의사결정 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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