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배달 플랫폼의 수수료 문제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실제로는 외식 산업 성장과 생태계 후생 증대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반면 플랫폼에 엄격한 우리나라의 정책 환경으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남아시아 시장을 점령한 그랩 같은 플랫폼을 키우기 위해서는 규제를 최소화한 정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나경 싱가포르국립대 정보 시스템 및 데이터 분석학과 교수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 회관에서 개최한 '차세대 유니콘 K플랫폼의 가치를 조망한다' 토론회에서 이 같은 분석을 제시했다.
경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배달 플랫폼 성장이 외식 산업 성장으로 이어졌고 노동 집약적이었던 음식 배달 산업이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배달 플랫폼이 산업 성장뿐만 아니라 입점업체, 라이더 등 이해 관계자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경 교수가 농림축산식품부의 2022년 외식업체 경영실태조사 원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배달 플랫폼을 이용한 음식점의 매출은 연 2억9022만원으로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은 음식점(2억1955만원) 대비 24.4%(7067만원), 배달 플랫폼을 이용한 음식점의 영업이익은 3211만원으로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은 음식점(2566만원)보다 20.3%(655만원) 높았다. 특히 '소규모 음식점'의 매출 증가율은 97.6%로 '대규모 음식점'의 8.6%보다 10배 이상 컸다.
경 교수는 “(배달 플랫폼이) 상권 쇠퇴를 방어하고 오히려 골목상권을 살려준다”면서 “입점업체에게도 후생 증대 효과를 확실히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엄격한 플랫폼 정책은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 발굴을 저해한다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디지털 규제지수는 0.203으로 캐나다(0.000), 미국(0.061), 일본(0.082) 등에 비하면 2배 이상 높다.
반면 싱가포르 같은 해외 주요국은 '선(先) 허용 후(後) 규제' 원칙으로 플랫폼 산업을 진흥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기술·스타트업 진흥을 위해 조 단위로 투자하면서 규제는 최소한으로 적용하고 있다.
경 교수는 “한국은 AI 기본법에 대해 많이 논의되지만 싱가포르는 AI 규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개인정보보호법령으로 간접 규제를 한다”고 밝혔다.
경 교수는 특히 동남아의 차량공유·음식배달 시장을 제패한 그랩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도 정부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랩은 플랫폼에 우호적인 규제 환경에서 AI 기술을 도입해 효율적이고 후생 효과가 뛰어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한 예로 라이더가 주문을 수행하기 전에 AI가 주문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으로 이동해 대기하도록 지시하는 '그랩 라이더 가이드'를 적용하고 있다. 대형 화물차량 보유 기사들에게 여유 시간에 배달 주문을 처리하는 '그랩 익스프레스'도 시행한다.
경 교수는 “한국이라면 공정위가 이 부분을 상당히 예민하게 보고 있어 AI 혁신 알고리즘을 시도하기 어렵다”면서 “플랫폼이 재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과도한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