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손톱

2025-01-02

손톱이 부러졌다. 아니 손톱이 찢어졌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어디에 걸려 이렇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살갗을 파고든 손톱은 절반가량 찢어져 사선으로 비스듬히 덜렁거렸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손끝이 쏙쏙아렸다. 옷을 입을 때, 머리를 감을 때도 날 선 면도날처럼 찢어진 손톱이 신경에 거슬렸다.

무엇이든 그 절실함을 모를 때는 그것의 존재와 고마움을 잊고 살아간다. 손톱이 그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푸대접받은 게 억울했던지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손가락 중 쓰임이 제일 많은 집게 손가락이라 더 까다롭다. 시간이 가면 났겠지, 하고 임시방편으로 일회용 밴드로 감아 두었다. 그러나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는 집안일 때문에 일회용은 오래 배겨내지 못했다.

물에 젖은 밴드를 풀어보니 피부가 퉁퉁 부풀어 올라 있었다.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 다시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이 청소며 잔심부름을 도와주었다. 오래전 남편을 도와 사업을 할 때다. 그때 아장아장 세상을 향해 발을 떼기 시작한 두 살배기 아들은 팍팍한 내 삶에 단비처럼 커다란 기쁨이 되어 주었다. 사무실 하나에 방 한 칸이 전부였던 작은 공장은 매일 같이 시끄러운 기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위험한 곳이었다.

기계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아들은 유치원에 간 누나가 돌아올 때까지 온종일 혼자서 놀아야만 했다. 착하고 유순한 아들을 보고 사람들은 부모가 바쁜 것을 아는 듯 얌전하다며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손잡고 마음껏 뛰어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우두커니 혼자 노는 단칸 방문을 열어 보면 아들의 친구는 달랑 장난감 로봇 하나뿐이었다. 그해 여름, 공장의 후텁지근한 기계 열 때문에 환기를 시킬 요량으로 방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그때 공장 한쪽에서 숨넘어가는 듯한 아이 울음소리가 기계소음을 뚫고 들려왔다. 황급히 뛰쳐나가 보니 아들이 공장 유리문 틈에 엄지손톱이 끼인 채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작고 여린 손톱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선홍색 피는 아들의 새하얀 손가락 사이로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파랗게 질린 아이는 마침내 울음소리도 못 내고 있었다. 아들의 작고 얇은 손톱은 바닥의 흥건한 피 위에서 종이배처럼 둥실 떠 있었다. 아이 손톱을 주워든 나는 슬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부러진 손톱은 영양분이 바튼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곤 하였다.

 도무지 자라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손톱 때문에 심사가 뒤틀리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평소 이보다 더한 아픔도 참고 견뎌내던 때와는 달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손톱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를 더 경계하는 것 같았다. 떼어버리고 싶어도 뗄 수조차 없는 화근덩이는 점점 살갗을 파고 들더니 누런 고름이 잡혀갔다. '쇠갈퀴가 몸속 여기저기를 박박 긁어대는 것만 같다' 고중얼거리던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천성이 부지런한 친정어머니는 손톱 두 개가 없다. 왼손의 새끼 손가락은 손톱이 비틀려 뭉뚝하고, 네 번째 약지는 아예 첫 마디가 잘려나 가고 없다. 어머니의 손가락은 내가 아주 어릴 때 공장 기계에 끼어 마쳤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반지를 잘 끼지 않으신다. 아니, 반지를 낀다 해도 손가락이 뭉뚝해 예쁘지 않다. 아버지가 해주신 보석 반지들도 간직하기만 할 뿐 끼지는 않으셨다. 얼마 전 친정에 갔을 때였다. 어머니는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 '파란색 보석이 행운을 안겨준다더라.'하며 몇 개 남은 반지 중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보라고 했다. 내가 망설이고 있자 제법 알이 굵직한 반지를 선뜻 건네었다. 나는 평소 어머니가 아끼던 반지니 그냥 가지고 계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허연 손톱 하나가 이불 위에 덜렁 빠져 있다. 벽에 걸린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며칠 뒤면 친정어머니의 생신이다.

△박경숙 수필가는 <계간수필>에서 수필 천료로 등단하였으며 전북 수필문학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전북수필문학상, 산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미용실에 가는 여자>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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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박경숙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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