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묻는다, 안전 사회를 만들자는 약속은 왜 또 실패했을까

2025-01-04

[주간경향] 지난해 12월 29일 태국 방콕에서 떠난 제주항공 여객기가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비상착륙하다 폭발해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다. 선박 침몰과 구조 실패로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군중밀집 대책의 부재로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에 이어 또 대형참사가 일어났다. 비통함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던 약속은 왜 또 실패했는가.

참사 원인으로 조류 충돌에 의한 엔진 고장, 랜딩기어(착륙 바퀴) 미작동,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 콘크리트 둔덕 등의 문제가 거론된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성급한 원인 진단이 아닐지 모른다. 반복되는 참사는 우리가 지난 참사를 통해 새로운 사회로 거듭나지 못했기에 초래된 것이다.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참사는 또 반복될 것이다.

“재난 참사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족의 아픔을 사회적 아픔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미류 인권활동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곧 생명을 대하는 자세다. 과거 참사 유족들과 인권활동가·연구자들에게 물었다. 가눌 길 없는 유족의 슬픔 앞에서 우리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는가. 아울러 언론의 보도 관행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179명의 죽음은 ‘불운’이 아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부정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드러날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긴 호흡으로

지난해 12월 29일 아침, 경기도 안산에 사는 정부자씨는 멍하니 TV 화면을 바라봤다. 비행기가 폭발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정신없이 휴대전화로 뉴스를 검색했다. 그는 2014년 “사춘기 시절에도 고단한 엄마 챙기느라 투정 한번 안 했던 딸 같은 아들, 내 삶의 전부” 신호성군을 잃은 세월호 참사 유족이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갑자기 땅으로 내려앉는 것 같고 앞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조바심이 나고…. 10년 전 그때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며칠간 쉼 없이 뉴스 속보를 들여다본 그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국가는 왜 참사가 일어나면 빨리 처리하고 정리하려고만 할까요. (국가 애도 기간이) 1월 4일까지라고 하는데, (이렇게) 빨리 수습하려고만 하는 태도는 아니라고 봐요. 일단 유해를 온전히 찾아야 하잖아요. 그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유가족이 ‘마음 감옥’에서 살지 않길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서 유해를 찾아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긴 호흡.’ 참사 유족들과 인권연구자들이 강조하는 공적 애도의 첫 번째 원칙이다. 대형참사의 원인 규명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과거 참사에서 한국사회는 빠른 수습과 복구만을 강조하며 시민들의 애도 역시 그 기간 마무리 지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이번에 국가가 나서서 7일의 애도 기간을 설정한 것을 놓고는 다양한 비판이 나온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말한다. “애도의 시작과 끝은 피해자들이 정하는 것이 맞습니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해선 안 돼요. 아울러 공적 애도는 같이 슬퍼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긴 호흡으로 참사의 추이를 지켜보고 유가족의 말을 경청할 태도를 갖추는 것, 그것이 공적 애도의 태도입니다.”

“참사 이후의 시간을 유족과 함께하겠다는 약속”(미류 인권활동가)은 얼핏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한국사회는 이 약속을 번번이 어겼다. 2017년 12월 충북 제천시의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했을 때 제천 일대는 애도의 물결로 일렁였다. 그러나 유족들이 소방당국의 대응에 아쉬움과 의문을 말하면서 지역 여론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유족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40여일 만에 분향소를 철거해야 했어요. 유족들이 건 현수막이 훼손되기도 했고요. 분향소가 설치된 공간이 스포츠시설이었는데 ‘유족들 때문에 주민들이 쓰지 못한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애도의 기간이 길어지니까 사람들이 ‘나의 일상이 제약당한다’, ‘경제에 피해를 준다’ 등의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유 센터장의 말이다.

노동자 23명이 숨진 지난해 6월의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도 마찬가지다. “아리셀 희생자 지원 그만, 행정 정상화”, “분향소는 아리셀 공장으로, 시민들은 화성시청을 이용하고 싶다” 참사 한 달 만에 화성시 통장·이장협의회가 유족들을 향해 내건 피켓 문구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족들 역시 “그만하라”는 말들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국토부 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원인 조사에는 최소 6개월~3년이 소요된다. 사고의 표면적 원인뿐 아니라 구조적 원인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피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긴 여정을 함께할 준비가 됐는가. 그때까지 슬픔을 거둬들이지 않고, 유족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

■고통 구경을 멈추자

전남 무안국제공항 현장에서 취재 중인 광주전남 지역일간지의 한 기자는 언론비평 매체 ‘미디어오늘’에 이런 말을 했다. “사고 초반 실종자 가족이었던 할머니 한 분이 바닥에 주저앉다시피 눈물을 흘리시면서 호소하는데 방송사에서 소위 그림을 따기 위해 경쟁적으로 플래시를 터뜨리는 모습이 기이했다. 당일 저녁엔 유족분들이 ‘우리가 원숭이냐, 구경난 것도 아닌데 카메라 들이밀며 인터뷰 따는 건 부적절하다’며 소리 질렀다. 나도 뒤로 빠져서 현장을 파악해야겠단 판단이 들어 멀찍이 떨어져 취재했다”(미디어오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이 만든 현장 취재 윤리’ 12월 31일)

재난의 얼굴은 언론을 통해 재구성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국기자협회는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해 피해자 인권 보호 등을 약속했지만 이는 ‘최소한의 윤리’일 뿐이다. 인권연구자들은 재난보도준칙에서 더 나아가 언론이 유족들의 고통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관행도 되짚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자 고통의 과잉 소비를 멈출 것. 올바른 공적 애도를 위한 두 번째 원칙이다.

“초기의 재난 서사가 중요합니다. ‘이 재난은 이렇게 발생했대’라고 하는 얘기가 재난 서사입니다. 그런데 피해자 고통 중심의 서사는 금방 휘발돼요. 피해자들을 수동적인 주체로 끌어내릴 수도 있고요. 피해자들의 아픔과 사연이 드러날 필요는 있지만 지나치게 거기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유족의 고통에만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칫 ‘성급한 원인 찾기’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세월호 참사 특조위 등에서 활동했던 재난 사회학자 박상은씨는 말한다. “세월호 참사 때 외국 언론과 한국 언론이 유족의 슬픔을 담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외국 언론은 울음을 찍더라도 원거리에서 조용히 슬픔을 전하는 방식이었다면, 한국 언론은 감정을 자극하는 클로즈업 샷을 찾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격렬한 감정을 보여줄수록 빨리 조사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사회적으로 생기고, 조사기관도 그 압박을 받게 될 거라 봅니다. 원인을 제대로 찾기 위해 차분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덜 자극적인 보도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피해자의 고통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대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참사를 다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논하기 위해서는 일단 조사를 기다려야겠지만 그전에 귀 기울여야 할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항공업계 산재 조사를 하면서, 항공사 정비 노동자들께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정비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운행 중심으로만 일하고 있어서 불안하다는 얘기들이었죠.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항공사 실태들을 얘기하면서 이 참사의 외연을 확장해야 합니다.”(전 연구원) “다른 재난 사례를 보면 결국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가 핵심 정보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주관적 정보는 주의해야겠지만, 항공업계와 관광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압박을 받고 있으며, 어떤 동기와 목표로 움직여왔는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미류 인권활동가)

■합당한 재난 서사

재난 서사는 재난이 왜 발생했느냐에 대한 사회적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국사회는 대형참사를 여러 차례 겪었지만 한 번도 올바른 재난 서사를 구축한 적이 없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3개의 위원회가 7년에 걸쳐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침몰 원인조차 단일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화물 과적 등으로 인한 복원력 상실 및 기계결함을 의미하는 ‘내인설’과 ‘외력충돌 가능성(외력설)’을 나란히 제시했고, 뒤이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가능성이 작다’면서도 외력설을 기각하지 않았다. 누군가 고의로 침몰시켰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끝내 떨쳐내지 않은 것이다. 아울러 목포해양경찰서 123정장 등 개개인의 잘못 외에 해경 조직은 왜 그토록 구조에 무력했는가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 역시 여전히 공란으로 남겨져 있다. 그 결과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한 공동의 서사가 만들어지지 못한 채로 10년이 흘렀다.

이태원 참사는 국가가 주도로 만든 재난 서사 자체가 ‘2차 가해’였다. 정부의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전에 “나라 구하다 죽었냐”(김미나 창원시의원)는 망언이 쏟아져나왔다. 참사로부터 1년 11개월이 흐른 지난해 9월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올해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족들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인한 군중관리 소홀이 참사로 이어졌다는 의혹이 확인돼 이태원 참사 이야기(재난 서사)가 다시 쓰이길 바라고 있다. 이태원 참사로 딸 최유진씨를 잃은 최정주씨는 “아이들이 놀러 가서 그렇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 오명을 아직도 벗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참사 직후 유족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을 비롯해 시신을 둘러싼 여러 은폐 사실이 반드시 밝혀져 그날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179명의 생명을 앗아간 여객기 참사의 서사는 어떻게 구성될까. 대 언론 브리핑이 가능한 ‘힘 있는 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송경훈 제주항공 경영지원본부장은 참사 당일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여객기 참사)는 항공기 정비 소홀과 관련된 이슈는 아니다. 항공기 정비와 관련해선 양보가 있을 수 없다. 무리한 운항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모든 정비를 한치 소홀함 없이 꼼꼼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항공의 여객기 한 대당 연간 운항시간은 타 항공사보다 30~80시간 길었고, 정비지연이 가장 많이 발생한 항공기 10대 중 상위 9대는 제주항공 것이었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31일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됐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가 “국토교통부 예규 위반이 맞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규정 위반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정비나 로컬라이저가 참사의 원인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항공 안전 시스템이 무너져 참사가 일어났으며, 무리한 운항과 모호한 규정 등은 이 시스템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올바른 재난 서사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시스템의 허상을 드러내는 서사다. 재난 사회학자 박상은씨는 세월호 조사실패 사례를 분석한 책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에서 “재난은 여러 행위자들의 결정적이지 않은 잘못과 실수로 발생한다”며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거나 승객들을 구조하지 말라고 명령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중략) 수많은 사람의 잘못과 부주의, 무능으로 발생한 재난의 책임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 사회적 논의가 진척(돼야 한다)”고 말했다. 항공사고 전문 유튜버 ‘다큐9’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항공사고 분석 영상을 제공해온 그는 참사 직후 올린 게시글에서 “책임자를 빨리 잡아낼 이유가 없다. 책임자가 빨리 드러난다고 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누군가의 악의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의로 재난을 일으킨 악인은 이번 참사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기다림 끝에 우리가 마주할 조사 결과는 여러 잘못의 중첩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통해 재난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안전 시스템을 뜯어고칠 것인가. 각자의 몫으로 분배될 책임부터 성찰하는 것이 올바른 재난 서사의 시작점이 될지 모른다. 전 연구원은 말한다. “공적 애도를 수행하는 시민들은 자기에게 책임을 지우는 이들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앞선 참사의 유가족들이 현장에 달려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싸우지 못해 이런 참사가 또 발생해서 미안하다’고요. 자기에게 책임을 지우는 거죠. 그리고 자기에게 책임을 지우는 시민들이 (참사와 관련해 누군가의) 책임을 물을 때 그 무게는 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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