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관광 신드롬
식을 줄 모르는 한류 열풍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연일 늘면서 한국 관광업(이하 ‘K관광’)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9월 방한 관광객 수는 170만28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146만4300명)보다 16.3%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같은 달보다 16.7% 많은 숫자다. 관광공사는 현재 추세로 봤을 때 올해 목표치였던 총 1850만 명의 방한 관광객 유치에 성공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침체된 내수 경기에 활력을 가져다주는 희소식이지만 과제도 있다.

지난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을 찾은 해외 명사의 K관광 ‘샤라웃’(shout out, 존중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올리브영 경주황남점을 방문한 다음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국에서 구매한 스킨케어 상품”이라며 한국 화장품 13개의 사진을 올려 자랑했다.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서울에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깐부치킨 삼성점을 방문했다. 그는 맨손으로 치킨을 먹은 뒤 기자들을 향해 “정말 맛있다”를 연발, 이후 깐부치킨의 전국 주문량이 폭주했다.
작년 1637만명 방문, 1년새 48% 증가
두 사람이 찾은 K뷰티 전문점과 치킨집은 최근 외국인 사이에서 한국 관광의 필수 코스로 각광받는 명소다. CJ올리브영 관계자는 “지난해 189개국 외국인 942만 명이 전국 올리브영 매장을 찾아 결제했다”며 “올해 상반기 전체 매장 매출에서 외국인 비중이 26.4%에 달했다”고 전했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의 K뷰티 쇼핑 장소가 시내 면세점에서 올리브영 등 전문점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교촌치킨 운영사 교촌에프앤비가 2023년 서울 이태원에 문을 연 교촌필방은 지난해 방문객의 80%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교촌에프앤비 관계자는 “동양미를 가미한 내부 인테리어로 외국인 방문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잡화점 다이소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명동과 동대문 등 K관광 핵심지에 있는 다이소 매장은 외국인 매출 비중이 50%에 달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한국 관광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들어 지난달 20일까지 19만52명의 외국인이 방문했다. K팝과 한국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 흥행으로 이곳의 외국인 방문객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외에 문구점 아트박스와 현대백화점그룹의 체험형 쇼핑몰 더현대서울도 인기를 얻고 있다. 더현대서울의 외국인 매출 비중은 2022년 3.3%에서 올해 9월 15.2%로 높아졌다.

이들이 외국인 사이에서 남산타워·경복궁 등 기존 관광 명소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가 있다. K드라마 등 K콘텐트를 통해 많이 노출되면서 ‘경험하고 싶은 곳’으로 떠오른 데다, 유튜브·틱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입소문을 얻고 있어서다. 지난달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 레딧에선 한 이용자가 “한국에서 다이소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곳(It’s a full-blown lifestyle)”이라며 자신이 접시와 세제, 반려견 간식과 전자기기까지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산 경험을 공유했다. 그러자 800명이 넘는 이용자가 ‘좋아요’ 아이콘을 눌러 공감했다.
이 같은 신흥 명소의 인기 속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2023년 1103만 명에서 지난해 1637만 명으로 1년 만에 48.4% 증가했다. 중국(460만 명)·일본(322만 명)·대만(147만 명)·미국(132만 명) 등 순이다. 팬데믹으로 한동안 침체됐던 K관광 수요가 가파르게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남성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방한 외국인 수는 지난해부터 연평균 7.1% 증가해 2029년 2300만 명을 기록할 전망”이라며 “K콘텐트의 글로벌 흥행에 따른 추가적인 수요 확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의료관광과 MICE(회의·포상관광·국제회의·전시행사)산업 육성 방침을 발표한 것도 K관광을 향한 장밋빛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GDP 대비 관광업 비중 OECD 하위권
다만 몇 가지 과제도 지적된다. 대표적인 게 늘어나는 수요 대비 부족한 국내 인력 문제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문조사에서 관광 업계의 기업 10곳 중 8곳은 인력난을 호소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대학의 관광·호텔 관련 전공 입학생이 최근 3년간 1만 명 이상 감소했다”며 “업계의 임금과 복리후생 등이 열악해 일자리로서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이 인재 감소와 인력난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처우 개선을 위한 업계 노력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관광 관련 학과 지원자 수는 2019년 4만4912명에서 지난해 2만3243명, 재적학생 수는 2만15명에서 1만7967명으로 급감했다.
권봉헌 백석대 관광학부 교수는 “관광업에서 인력난 해소를 위한 외국인 인력 도입이 활발해지도록 정부가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과 지방도시 간 관광 인프라 및 방문객 수의 고질적인 양극화 문제도 계속되고 있다. 올해 5월 기준 방한 외국인 관광객의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지방도시 방문 비중은 전체의 7.8%에 그쳤다. 그나마도 제주·부산 등 관광 인프라가 좋은 일부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11개의 지방관광 특화상품을 출시하는 등 개선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신학승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지역 특화 콘텐트의 다변화와 관련 상품 개발 강화, 직항 노선 등 인프라 확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광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202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광업 비중이 약 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인 것은 물론, 글로벌 평균치인 약 9%에도 크게 못 미친다”며 “관광업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자 업종인 만큼 정부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지원책 마련으로 K관광 중흥기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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