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지원금, 가뭄에 단비인가 일시적 해갈인가

2025-10-14

이재명 정부가 추진한 민생지원금 정책은 지갑이 얇아진 국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소비쿠폰 지급 직후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에는 활기가 돌았고, 서민들은 잠시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정책이 한국 경제의 뿌리 깊은 문제(저성장과 양극화)를 치유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추석을 앞두었던 전통시장 풍경은 그 단면을 잘 보여주었다. 장바구니 물가가 예년보다 크게 뛰면서 시민들은 “올해는 차례상 차리기가 겁난다”고 하소연했다. 생필품과 제수용품 가격이 폭등하니, 지원금을 받아도 물가 인상분을 메우기조차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여기에 전·월세를 비롯한 주거비 부담이 끝없이 늘고,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보육비와 교육비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서민 가계는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소비 진작 차원의 정책만으로는 서민 경제의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현금 뿌리는 소비 진작은 미봉책

물가·주거비 앞에 체감효과 미미

저성장과 양극화 극복 위해서는

동반성장 틀 안에서 재정 집행을

민생지원금이 제2차 지원 때 저소득층과 농어촌 주민에게 집중된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돈을 받은 이들이 생활비와 필수 지출에 곧바로 사용함으로써 서민 경제를 살리고, ‘함께 더 잘 사는’ 분위기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효과도 오래 가지는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금을 뿌리는 미봉책이 아니라, 장기적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생산적 투자다.

민생지원금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유사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국민 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고 내수 기반을 강화하려는 접근 방식이 닮아 있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은 임금 인상에 치우치면서 중소상공인의 부담은 커지고 일자리 창출 효과는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그 결과 성장도 분배의 균형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정책은 실패했다. 민생지원금이 같은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단기적 현금 지원만으로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없다. 반드시 혁신 성장 및 공정한 분배 전략과 결합해야 한다.

정부의 재정 지출이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동반성장’이라는 큰 틀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왜 지금 한국 경제에 동반성장이 필요한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는 다른 이유도 없지는 않으나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로 인한 구조적 종속성과 영업수익률 격차(클 때는 3:1)가 고착되면서, 일자리의 대부분을 제공하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어 왔다. 대기업 이익이 협력중소기업과 근로자, 지역 경제로 충분히 환류되지 못하면서 내수는 위축되고 경제의 순환 동력은 약화되었다. 그 결과 성장은 정체되고, 대기업·중소기업, 수도권·지방 간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면서 소득·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구조적 난관에 직면해 있다.

동반성장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전략이다. 동반성장은 단순한 분배 개선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로 확산되고, 이들의 소비 확대가 다시 기업 성장을 뒷받침하는 선순환 구조를 복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단기적 소비 진작을 넘어 공정거래 질서 확립, 기술 혁신, 사회적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하도급 관계에 있는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납품단가 및 기술 탈취를 없애야 한다. 또한 원청 대기업의 이익이 일정 수준을 넘을 때 초과분을 하청 중소기업과 공유하는 초과이익 공유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자발적 참여 유인이 강화되고, 투명한 초과이익 산정 후 기여도와 협상력 기반에 따라 차등 분배가 이루어지는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말이다. 대·중소기업 간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협력 생태계 조성은 교육과 연구개발, 출산·돌봄·보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대한 공공지출과 함께 미래 성장을 위한 생산적인 투자가 될 것이다.

둘째, 구조적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의식적 배려와 함께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선택적 복지’가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에게 양질의 필수 복지를 제공하면 생활 안정과 소비 확대가 동시에 가능하다. 결국 민생지원금은 보편적 현금 살포가 아니라 맞춤형 복지와 결합될 때 지속성이 확보된다.

민생지원금 정책은 당장 소비를 살리고 서민의 삶을 지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경제의 장기 해법은 아니다. 단순한 수혈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취약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동반성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부의 재정은 취약계층을 위한 선택적 복지와 사회적 투자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저성장과 양극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더 잘 사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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