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잘 보는 회장님’에 대한 재계 야사(野史)는 차고 넘친다. 모 회장님이 짚은 땅마다 허허벌판이 마천루가 되었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다. 한데 이제는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세계지도를 펴놓고 입지를 고민한다. 미·중 무역 갈등에 트럼프 리스크, 공급망, 전력과 용수까지,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아져서다.
패권국들이 무역 규제를 설계할 때, 기업은 복잡한 방정식을 풀며 글로벌 제조 투자처를 물색한다. 상부가 정책을 내면 하부는 대책을 짜는, 그야말로 ‘첨단 제조 대(大)임장 시대’다. 뒤늦게 ‘제조’로 회귀한 미국에서 첨단 제조업 공장이 몰리는 곳은 텍사스·애리조나주. 왜 그럴까. 또 한국 대기업 총수들이 인도에 공들이면서도 긴가민가한다. 이건 또 왜? 제조업의 강남이라는 베트남·말레이시아는 트럼프 시대에도 매력적일까?
1. ‘제조업의 강남’ 베트남·말레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한동안 희토류 같은 광물, 값싼 노동력 등을 찾아 동남아시아로 향했다. 그런데 이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제조 기지는 강력한 정부 지원에 힘입어 반도체 등 첨단 제조까지 노린다. 글로벌 기업의 인력·입지 확보전은 더 치열해진다. 미국의 동남아시아 지역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가 최근 6년 새 2.5배 이상 늘었다(2017년 291억 달러→2023년 744억 달러).
▶동남아산(産) 반도체 :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말레이시아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이미 세계 5위 반도체 수출국인 말레이시아는 최근 ‘반도체계 중립국’을 자처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 이슈를 기회로 삼아,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적인 대안임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 지난달 17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투자 행사에서 웡시우하이 말레이시아 반도체산업협회(MSIA) 회장은 “말레이시아는 미·중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글로벌 기업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인프라 약점, 정부 지원으로 덮어 : 기업 친화적인 정부 정책도 동남아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다. 베트남에 공장을 설립한 국내 반도체 업체 하나마이크론 이동철 대표는 “인프라가 아직 불안정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지원이 생각보다 훨씬 강력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베트남 전역에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 지역별 단전이 이뤄진 적이 있었는데, 지방정부에서 우리 공장만 특별히 전력 공급을 유지해줘서 중단 없이 공장을 가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