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혁신으로 챗GPT 넘어선 딥시크

2025-01-29

미국 컬럼비아대 마틴 챌피 교수는 투명한 외피를 지닌 벌레의 신경조직을 검사할 때마다 벌레를 죽이는 연구 방식이 영 불편했다. 한 세미나에서 초록빛 해파리 안에 있는 형광성 단백질에 자외선을 쏘면 초록색을 발산한다는 강연을 듣는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투명한 벌레의 몸 속에 형광성 단백질을 넣으면 자외선으로 단백질의 이동을 추적 관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벌레를 죽이지 않아도 됐다. 요즘엔 형광성 단백질이 다량으로 복제돼서 암 세포 추적과 같은 의학 분야 등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챌피는 이 아이디어로 20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총아인 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가 탄생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통찰이 있었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의 성능을 높이는 화두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더 작게 만드는 방식은 기술적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어느 날 반도체에 구멍뚫는 작업을 하고 있는 동료 교수 방에 놀러갔다가 의외의 돌파구를 찾았다. 여러 층으로 쌓은 반도체 속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통해 전력과 신호를 공급할 수 있겠다는 통찰이다. '3차원 적층 구조' 방식의 HBM 신화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중국의 AI 스타트업인 딥시크(DeepSeek)가 지난 27일 애플 앱스토어에서 오픈AI의 챗GPT를 밀어내고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 AI업계에 충격을 줬다. 일부 성능 테스트에서는 오픈AI가 지난해 9월 출시한 AI 모델 'o1'을 앞질렀다고 한다. 딥시크는 자사 AI 모델에 엔비디아의 저사양 칩을 장착했고 개발비는 557만6000달러(약 80억원)였다고 밝혔다. 이게 사실이라면 메타의 AI 모델인 '라마3' 개발 비용의 10분 1 수준이다. 미국 내에서는 "AI의 스푸트니크와 같은 순간"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 기술주들의 주가가 줄줄이 하락한 것은 이런 딥시크의 잠재력 때문이다.

창업자 량원펑(梁文鋒)은 27일 '더 차이나 아카데미'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이런 혁신이 가능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한 젊은 연구원이 기존 방식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대안(代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며 "혁신은 무엇보다 신념의 문제로 자신감이 필요하고 그런 면에서 젊은 사람들이 해내기 쉽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투자가 반드시 더 많은 혁신을 낳는 것은 아니다"고도 했다. 한 연구원의 통찰과 팀원들의 혁신 노력이 미국 주도 AI 판도를 흔들었다. 딥시크의 사례는 미국 빅테크들의 천문학적 AI 투자에 지레 위축됐던 한국 AI 개발 기업들에게도 시사점을 던진다.

조남규 논설위원 coolm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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