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산모 치료 대표 권위자
63세 국내 최고령 출산 맡기도
2024년 이어 2025년도 전임의 ‘0명’
잦은 당직·저수가 등 원인 꼽아
“조산 위험 이전보다 커졌는데
모든 원인을 의료진에만 돌려
사고 줄어도 고액 소송 늘어나”
‘저희 딸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게 도와주시고, 기적 같은 저희 딸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략) 이 마음 잊지 않고 행복한 가족으로 지내겠습니다.’
국내 ‘고위험 산모’ 치료 권위자인 박중신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산부인과 교수·대한모체태아의학회장)은 지난 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의 매력을 설명하며 이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에는 두 개의 다른 글씨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계속되는 유산에 지쳐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아이, 그 아이를 기적처럼 만나게 해준 데 대한 감사함을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꾹꾹 눌러 담은 카드였다.
박 교수는 이런 편지를 30여년간 셀 수 없이 받아왔다. 그가 분만실을 ‘감사와 감동의 공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국내 최초로 남편만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인 부부가 시험관 시술을 통해 ‘음성’ 수정란으로 무사히 출산하게 하고, 63세 국내 최고령 산모의 아이를 받아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기피 분야로 전락한 ‘산과’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단다. 서울대병원조차 지난해 처음으로 산과 전임의 ‘0명’을 기록했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제가 전공의를 시작한 이후 산과 전임의가 0명인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서울대병원에만 3∼4명 있던 산과 전임의가 이제는 전국에서 손에 꼽습니다. 이런 현상은 의정 갈등 이전부터 이미 시작됐어요. 대학병원에서 산과 교수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대를 이어갈 후속 세대가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무겁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박 교수는 △저수가 △소송 위험 △잦은 당직 등을 산과 기피의 요인으로 꼽았다.
언제 출산할지 모르는 응급 산모가 늘상 있기에, 산과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없는 분야다. 그도 여전히 24시간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오랜 기간 길든 습관이다.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의사들이 산과를 기피하는 주요 원인이다.
“단순히 젊은 세대에게 사명감이 없다고 뭐라고 할 일이 아닙니다. 불편을 감수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저수가’와 소송 위험이 있으니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들도 소송을 피해 간 사람이 없습니다.”
최근 산모 나이, 다둥이 출산 증가로 조산 위험이 커졌는데, 사망·장애 사고만 발생하면 모든 원인을 의료진에 돌리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박 교수는 “1990년대만 해도 조산아의 뇌성마비가 워낙 많아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재활의학과에서 그런 사례로 콘퍼런스(학술회의)를 할 정도였지만 지금보다 소송이 많지 않았다“며 “의학기술의 발달로 심각한 장애 등 사고 확률은 많이 줄었지만 오히려 (완벽하게 안전한 분만·수술) 기대감이 커지면서 고액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의료진이 100% 예방하는 ‘완벽’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과거 국내에 닥친 ‘산과 위기’를 10여 년 늦춰 본 경험이 있기에 그는 정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실감한다.
2007년 대선 즈음이다. 정부가 산모의 초음파 비용을 건강보험 급여를 통해 1만원 아래로 책정하려 하자, “초음파 수가를 조정할 게 아니라 ‘바우처(이용권)’ 형식으로 30만원을 임산부에게 지급하는 게 낫다”고 설득했다. 이것이 산전·산후 관리에 유용하게 만들어진 ‘고운맘카드’였고, 초음파 수가 고정으로 붕괴할 뻔했던 산과 분야는 한숨 돌렸다.
박 교수는 분만실이 소송을 잉태하는 곳이 아니라 탄생의 기쁨과 감동을 나누는 공간으로 유지되기를 바랐다.
“산부인과는 기쁨과 감사라는 말로는 부족한 감동이 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작은 생명의 탄생은 기적 이상이에요. 바로 산과 의사를 하는 이유입니다. 산과가 소송이 아닌 기쁨과 감사의 공간으로 젊은 세대에게 전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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