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에 승무원 없는 군함까지…해군 ‘유령함대’ 첫발 내디뎠다 [박수찬의 軍]

2024-09-15

우리가 흔히 아는 해전 방식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항공작전에선 드론과 중·대형 무인기가 유인전투기의 임무를 점진적으로 대신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바다는 여전히 승조원 다수가 탑승하는 대형 전투함이 주류를 이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같은 국면을 극적으로 바꿨다. 우크라이나군은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수상정(USV)으로 러시아 흑해함대를 공격, 흑해가 러시아의 바다가 되는 것을 막았다. 해군력이 미약한 국가도 해양대국의 제해권 확보를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한국 해군도 무인체계를 전면 적용하는 ‘네이비 시 고스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LIG넥스원이 선정된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개발 사업은 해군 무인 전력 강화와 더불어 해상 무인체계 개발 주도권을 가늠할 수 있는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다.

◆약 400억짜리 사업이 중요한 이유

LIG넥스원에 수주한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개발 사업은 2027년까지 12m급 무인수상정 2척을 2027년까지 업체 주관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사업비는 381억원으로 수중탐색용 예인음탐기와 수상탐색용 레이더, 광학·적외선(EO/IR) 카메라, 기관총을 탑재한다.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는 수많은 전력증강사업 중에서는 소규모다. 하지만 해당 사업을 둘러싼 경쟁은 매우 치열했고, 향후 파급효과도 크다.

사업에선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이 경합을 벌였다. LIG넥스원은 2015년 연안 감시정찰용 무인수상정인 해검을 개발했다. 이후 해검-II, 해검-Ⅲ, 해검-V 등을 만들며 기술을 축적했다.

해검-II는 소형 무인잠수정 모듈을 탑재했고 해검-Ⅲ는 12.7㎜ 기관총과 비궁 유도로켓 발사대를 탑재해 공격력을 갖췄다. 해검-V는 함선에 탑재해서 의심스런 표적에 대응한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6월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에서 무인수상정 해령을 공개했다. 해양경찰의 요청으로 만든 해령은 해난사고 시 수색정찰이나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다.

음파탐지기 탑재 무인잠수정 4대를 군집운용하면서 수중 상황을 확인하면, 구조사가 인양을 한다. 기뢰 탐색 등도 가능하다. 해상상태 4(파도 높이 1.3m)에서도 항해하며, 사람의 조작 없이 자동으로 이안·접안이 가능하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2021년 3억 달러(약 4000억원)를 투자한 영국 우주인터넷 기업 원웹의 저궤도 위성망을 활용한 군 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도 무인수상정을 운용할 수 있다.

LIG넥스원(해검)와 한화시스템(해령)은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개발 사업 수주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결과 LIG넥스원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정부 관계자는 “제안서 평가 단계에서 LIG넥스원은 ‘이것도 저것도 해보겠다’는 식의 제안을 제안서에 다양하게 담았고, 평가위원 반응도 긍정적이었다”고 전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도 “무인수상정 개발 경험이나 기술 축적 등에서 볼 때, 해군이 원하는 무인수상정 개발에서 LIG넥스원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번 결과는 미래 해상 전력증강 분야에서 K방산의 판도를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 각국 해군에선 무인전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유인함정은 승조원 피로 등의 문제로 35노트(시속 64㎞)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다. 식량과 식수 보급 문제도 있고, 군수지원체계가 갖춰진 항구가 필수다.

무인함정은 이같은 제약에서 자유롭다. 승조원 피로나 안전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해안에 숨겼다가 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

자폭 무인수상정은 귀환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므로 항속거리가 두 배로 늘어난다. 가격도 유인함정보다 훨씬 저렴하며, 기뢰·잠수함 탐색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먼 거리에서 대형함정을 단번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7년 10월 21일 60t짜리 이집트군 고속정이 스틱스 미사일로 1700t짜리 구축함을 격침한 ‘에일러트 쇼크’는 수십㎞ 거리에서 미사일을 발사, 구축함을 타격했다.

무인수상정은 적함의 정확한 위치만 파악하면 수백㎞ 거리에서도 공격이 가능하다. 적함이 무인수상정을 사전에 발견해도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 우크라이나군이 흑해에서 러시아군을 무인수상정으로 공격하는 제2의 에일러트 쇼크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같은 장점 때문에 한국 해군도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인 ‘네이비 시 고스트’를 추진중이다. 이에 따라 2030년대까지 해군이 추진하려는 각종 무인수상정·잠수정 사업이 10여개에 달한다. 무인정찰기와 드론 도입도 계획되어 있다.

단순한 플랫폼 외에도 군수지원, 장비 탑재, 위성 통신 등 무인수상정과 잠수정 운용에 필요한 요소까지 포함하면 한국 해군 무인 전력에 투입될 비용은 수 조원에 달한다.

유인함정 분야를 장악한 국내 양대 조선업체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제치고 해군 전력 분야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얻을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그 전초전은 정찰용 무인수상정 사업이었다.

해군의 첫 무인수상정 사업을 수주했다는 상징성과 선점 효과를 얻으면서, 해군의 소요와 요구사항을 누구보다 더 빠르고 정확히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정찰용 무인수상정이 해군의 표준이 되면 LIG넥스원은 전투용·기뢰전 무인수상정 사업 수주 가능성도 커진다. LIG넥스원이 무인수상정 사업에 뛰어든 다른 업체들보다 앞서갈 수 있는 기반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무인수상정으로 흑해 장악한 우크라이나

무인수상정은 전통적 방식으로는 교전 자체가 불가능한 국면도 극복하는 위력을 지녔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흑해함대에 맞서 흑해 서부 일대를 지켜낸 것도 무인수상정 덕분이다.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에 따르면,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은 모두 격침 또는 자폭했다. 냅튠 대함미사일로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함을 격침했으나, 지상발사 미사일로는 한계가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무인수상정에 주목했다. 카메라와 위성 통신 장치, 선수에 탄두를 탑재한 소형 무인 선박 형태로서 차고나 소규모 산업 시설에서 제작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우크라이나는이같은 무인수상정을 100대 이상 건조했다.

여기에 스타링크 같은 대용량 양방향 위성통신을 결합, 먼 거리에서도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부터 무인수상정으로 러시아 흑해함대를 적극 공략하기 시작했다. 상륙함과 미사일 코르벳함, 순찰선, 기뢰제거함, 소형 보트 등이 무인수상정 공격을 받고 파괴됐다.

흑해함대는 크름반도의 세바스토폴을 떠나 흑해 동부의 노보로시스크로 이동했으며, 해상 순찰도 축소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오데사에서 흑해 서부 해역을 거쳐 지중해로 나아가는 항로를 통해 곡물 수출을 지속할 수 있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전통적 방식에 따라 유인 전투함으로 러시아 흑해함대를 상대하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러시아 흑해함대 함정들이 노후화했지만, 호위함 1척과 기타 소형 함정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우크라이나 해군은 러시아와의 해전에서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튀르키예에서 건조되어 시험 중인 신형 코르벳함 2척이 있지만, 전세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결국 무인수상정에 집중한 우크라이나군의 판단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조합해서 만든 저가 무인수상정에 스타링크를 결합하면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표적도 타격이 가능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은 무인전력 구축의 첫 발을 뗀 한국 해군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최신 위성통신체계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스타링크가 없었다면, 우크라이나의 무인수상정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반도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인수상정이 작전을 펼치려면 최신 위성통신체계를 결합하는 것이 필수다.

정찰용 무인수상정 사업을 수주한 LIG넥스원도 향후 작전반경 확장을 위해 저궤도 상용위성 연동이 가능하도록 개발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내에선 한화시스템이 영국 우주인터넷 기업 원웹의 저궤도 위성망을 활용한 군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군위성통신체계-II와 더불어 주파수와 시간 등의 제한을 극복하면서 실시간 네트워크를 지원해 초고속·초연결 지휘통제체계를 구현하게 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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