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비상계엄 사태 여파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계엄 선포는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이를 계기로 탄핵 정국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반도체 지원법, 상법·자본시장법 등 재계를 둘러싼 각종 지원 법안들의 향방도 불투명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삼성, SK, LG 등 주요 그룹들은 전날 밤 내려졌던 비상계엄 사태 해제 이후 시장 및 그룹에 미칠 영향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부 그룹사는 경영진들을 소집해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이는 전날 밤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에 대한 여파다. 윤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겠다"며 비상 계엄을 선포했었다. 이후 국회가 본회의를 개최, 재석 190명에 찬성이 190명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키면서 6시간 만에 비상 계엄은 해제됐다.
다만 재계에서는 이번 계엄 사태가 탄핵 정국까지 번져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흘러가게 되면 힘을 잃은 정부가 그간 약속했던 산업 지원 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지원법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국내 산업 지원을 위해 총 14조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던 바 있다. 또한 여당이 내놓은 보조금 등 재정 지원 근거와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제외 등을 골자로 한 반도체 특별법도 야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으며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일몰 기한 연장도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다. 여기에 현 정부가 탄핵 정국을 맞이하게 되면 결국 관련 지원법들도 속도를 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반도체 업계는 미국 대선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게 되면서 글로벌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현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면서 우리 기업에 주기로 했던 반도체 보조금 지급 여부 또한 불안정한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정세마저 불안해지자,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 제고를 위한 각종 지원방안들이 물 건너갈 수 있다는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을 손보겠다고 하는데 이번 사태로 향방이 더욱 불투명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며 "더구나 국내 정국도 탄핵으로 분위기가 쏠리면 그만큼 산업 지원법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재계에서 우려하는 또 다른 법안은 상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이 꼽힌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일반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를 정기 국회 기간인 오는 10일까지 처리하기로 했다.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민주당은 이 조항에 '주주'를 추가해 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앞서 2020년 LG화학은 지금의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 하기로 결정했는데 당시 소액주주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배터리 사업을 분할 하면 기존 LG화학 주주 가치가 희석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경·재계에서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상법 개정에 대한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상법 전공 교수 131명 중 약 63%가 법안 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회사법에 이미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이사·감사해임청구권 등이 포함된 만큼 소수 주주 보호 조항이 있다는 이유를 주요 반대 사유로 내세웠다.
또 김창범 한경협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SK, LG, 현대차, HD현대, 한화, GS 등 주요 기업 사장단은 "국회는 상법 개정 등 각종 규제 입법보다 경제살리기를 위한 법안과 예산에 더욱 힘써주시기 바란다"며 긴급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많은 기업들은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시달려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상당한 애로를 겪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정부는 상법 개정안을 반대하며 이를 대체하는 '카드'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꺼냈다. 지난 2일 금융위원회는 상장사가 합병 및 분할 등을 하게 되면 이사회가 목적과 기대효과, 가액의 적정성 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공시하는 등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이번 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여당과 협의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계엄령 사태로 정국이 혼란에 빠지면서 개정안 제출이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다. 개정안이 제출되더라도 다수당인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