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0일은 매년 차별과 혐오로 인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사회에 알리는 트랜스젠더 추모의날이다. 이날을 맞아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은 하나의 캠페인 영상을 공유했다. 제목은 ‘나의 트랜스젠더 친구를 소개합니다’이다. 이름 그대로 트랜스젠더 친구를 둔 세 명의 출연자가 친구와의 여러 일화를 이야기하는 영상이다.
해당 영상에 나의 친구 예정 역시 출연했다. 예정은 인권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이후 8년간 서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이번에 영상 촬영을 하면서 처음으로 안 사실도 있다. 가령 예정이 만난 첫 트랜스젠더가 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정 외에도 내가 지금 알고 지내는 많은 친구에게 나는 처음으로 만난 트랜스젠더일 것이다. 내가 주변에 나 자신을 알렸을 때 모든 반응은 “전혀 몰랐다. 놀랍다”는 것이었으니.
그런 그들에게 나는 어떤 친구로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사실 2014년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때 주변에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리고 외형적인 모습을 바꾸는 전환 과정을 거친 당시, 나는 기존에 알고 있던 대학 동기들, 회사 동기 등과 연락을 끊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나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전환 이전의 과거는 없는 것처럼 지우고, 그때의 친구들과는 더 이상 이전처럼 연을 이어갈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2017년 언론을 통해 나를 좀 더 드러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알려졌을 때, 그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몇년 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관계는 이전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서로 간에 쌓였던 묵은 감정을 주고받거나 현재의 고민들을 나누면서 즐거워하는 그런 관계다. 요새는 여러 바쁜 일들로 자주는 못 보지만 그래도 여전히 만나면 반갑고 즐거운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나의 이러한 경험이 모든 트랜스젠더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학창 시절에 혐오로 인한 괴롭힘을 겪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주변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을 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애초에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친구를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매우 적다.
2023년 글로벌 조사회사인 입소스에서 전 세계 30개 국가를 대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주변에 트랜스젠더인 친지, 가족, 직장 동료 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한국인 응답자는 2%에 불과했다. 30개국 평균인 13%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였다. 트랜스젠더를 친구로 만나는 경험조차 못하는 이들에게 트랜스젠더의 권리, 이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법적 제도를 개선해 더 많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이유이다.
트랜스젠더 추모의날 이틀 뒤인 11월22일 한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트랜스젠더와 지지자들의 행진이 열렸다. 한국 행진의 슬로건은 ‘동네북: 두드릴수록 울리는’, 일본 행진의 슬로건은 ‘We are Here: 우리가 여기 있다’이다. 두 슬로건 모두 제도적, 사회적 장벽에도 포기하지 않고 트랜스젠더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이 더욱 크게 모이고 외치며 나아갈 것이라는 선언이다.
“사람과 사람이 친구로서 사귀는 데 편견과 선입견 없이 시작하는 그런 시대, 세대가 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무지개행동의 영상에서 또 다른 출연자 강단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말처럼 트랜스젠더 추모의날 행진에서 나온 선언이, 이제는 추모의날이라는 기념일을 통해서만이 아닌 일상에서 더 많은 트랜스젠더를 친구로서 만날 수 있는 시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