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가 사라졌다

2025-11-18

20여 년 전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을 때다. 지하철 환승역 플랫폼에 청아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바이올린을 배우던 초등생 딸아이가 감탄하듯 말했다. “와, 한국에서는 지하철역에서도 비발디가 들리네요.” 선율은 빠르고 경쾌했으며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 가볍게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비발디(사진) 바이올린 협주곡 ‘조화의 영감’이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 들어도 아, 하고 기억해내게 된다. 비발디 ‘조화의 영감’ 중 6번 1악장이다. 제목은 조금 낯설지만 유튜브로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이 그렇지만 나도 비발디를 즐겨 듣는다. 비발디는 한국인들에게 최애 작곡가중의 한명이다. 광고 음악으로 워낙 숱하게 등장해 그의 레퍼토리는 귀에 익다. 그뿐만 아니다. 비발디란 이름의 아파트 브랜드까지 있다. 그만큼 보통 한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울 지하철에 비발디가 사라지고 ‘얼씨구야’ ‘풍년’ 같은 낯선 창작국악이 차례로 등장했다. 대전 지하철의 ‘대전 블루스’, 부산 지하철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익숙하면서도 스토리가 있는 환승 음악도 없어지거나 아니면 대부분 국악으로 바뀌는 추세다. 국악이 소중하기는 하나 번잡한 지하철에 얼마나 어울릴지 의문이다. 혹시나 우리 전통음악을 사용해야 한다는 국뽕적인 저의가 있지나 않았을까 의구심이 든다. 나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 것이란 이유로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국수적이고 구시대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튜브의 비발디 ‘조화의 영감’에는 댓글이 엄청나다. 환승 음악으로 들었던 때를 그리워하며 비발디로 돌아가자는 글들이 많다. 명곡이란 그런 것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불현듯 비발디의 바이올린이 그립다. 깊어가는 가을 저녁, 당신도 ‘조화의 영감’을 한 번 들어보시라. 그 시절 그리움에 잠시 목이 멜지도 모른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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