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스폿] 한국인 투숙객 1%, 나만 알고 싶은 몰디브 리조트

2024-07-04

2024년, 한국인 투숙객 1% 미만. 남몰래 독점하고픈 몰디브의 낙원을 찾았다.

모국어로부터의 탈출

요즘은 MBTI로 인간을 유형화하지만, 나는 인간이란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구별지어질 수 있다고 본다. 반복에 둔한 인간과 반복에 취약한 인간. 전자는 범속한 나날들을 지극히 감당해 낸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에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외려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존경스럽다. 후자에게 반복은 끔찍한 지루함이다. 무료함과 무의미함을 동반하는 지독한 피로. 깨트려 마지않을 스트레스. 나는 확신의 후자다. 세상 가장 끔찍한 형벌은 태형도 화형도 아닌, 시시포스의 형벌이다. 매일 똑같은 일을 변함없이 꾸준하게 해내야 할 때 나는 거의 고통스럽다.

일상, 날 일(日)에 항상 상(常).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그 반복에 의도적으로 균열을 내는 가장 합법적이고도 강력한 방법은 역시 여행이다. ‘여행을 일상처럼’이란 표현은 나에게 난센스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여행의 가장 보편타당한 목적 아닌가. 왜 도대체 여행이 일상이 되어야 하는가. 여행은 여행으로 존재할 때 제일 짜릿하다. 내가 늘 미지의 곳을 떠도는 여행기자가 된 건 우연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아무튼, 이런 성향 탓에 여행지에 묻어나는 일상의 흔적들에도 꽤 예민한 편이다. 이를테면 이국땅에서 느닷없이 마주하는 K-뷰티 숍이나 익숙한 한국어 간판 같은 것들. 애써 찾은 맛집에 갔더니 한국인들만 드글드글 줄을 서 있는 광경.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다. 원인을 파고들자면 결국엔 ‘모국어’다. 생각보다 우리 삶에 모국어가 주는 피로함은 상당하다. 거기엔 어제의 상처와, 오늘의 불안과, 내일의 계획 같은 것들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모국어는, 미뤄 두고 싶은 책무를 불러 세우는 말소리다. 낯섦이 감각의 영역을 비집고 들어오려 할 때, 서둘러 틈을 막고 좁은 동선 안에 사유를 가두는 어휘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근본적으로 모국어로부터의 프리덤이 전제되어야 온전해진다. 서론이 길었지만 결론은 하나다. 클럽메드 몰디브 피놀루 빌라(Club Med Finolhu Villas)는 분명, 그럴 수 있는 곳이다.

1%의 한국인, 일상이 배제된 휴식

2024년 현재, 피놀루 빌라의 한국인 투숙객은 1% 미만이다. 조식당에서 옆 테이블의 한국인을 의식하며 괜스레 흘끔거릴 일도, 야자수가 우거진 산책로를 거닐 때 한국어가 날카롭게 귀를 찌를 확률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 만약 피놀루 빌라에서 당신이 한국인을 마주쳤다면 그는 1%에 해당하는 매니악한 여행자다. 그렇다고 리조트 전반의 퀄리티를 의심한다면 곤란하다. 명성과 품질이 늘 비례하진 않는다. 실력이 출중한 식당이라고 다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리조트도 마찬가지다. 단지 아직 한국인들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았을 뿐이다. ‘아직’은.

피놀루 빌라는 인도양의 프라이빗 아일랜드 가스피놀루 섬에 위치해 있다. 52개의 객실은 모두 독채 빌라다. 룸 타입은 크게 두 가지, 오버워터 빌라와 비치 빌라. 각각 선라이즈와 선셋 객실로 또 나뉘는데, 그중 가장 객실가가 높은 건 오버워터 선셋 빌라다. 테라스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서면 인도양이고 바다와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프라이빗 풀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몇 년 전 배우 유연석이 잡지 화보차 방문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오버워터의 시야가 바다에 편중돼 있다면, 비치 빌라의 시야는 좀 더 광각이다.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꽃도 있고, 바다도 있다. 우리가 마땅히 ‘자연’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그곳에서 숨 쉰다. 맨발로 쓸어 보는 뜨끈한 모래와 바닷바람에 섞인 신선한 풀내음. 그런 것들을 꿈꾸는 자에겐 확실히 비치 빌라를 추천.

클럽메드답게 일정 내내 모든 식사와 액티비티 등은 올 인클루시브다. 별도로 지불해야 할 금액이란 건 없다. 웰컴 기프트부터 버틀러 서비스까지 하이엔드 서비스도 기대해 볼 만하다. 역시 클럽메드답게 수상 및 지상 스포츠가 다양하긴 한데, 글쎄…. 피놀루 빌라는 사실 게으른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액티비티고 파티고, 그저 아무도 없는 해변에 누워 멍하니 떠 가는 뭉게구름이나 쳐다보는 게 좋다는 타입이라면 피놀루가 제격이다. 액티비티 애호가에겐 스피드 보트로 5분 거리에 있는 클럽메드 카니 리조트가 더 알맞다(물론 피놀루의 투숙객은 카니의 모든 액티비티, 식사를 전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카니는 캐주얼하고 피놀루는 럭셔리하다. 카니에겐 네 살배기 아이를 목마 태운 부모의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지고, 피놀루는 은퇴한 70대 노부부의 여유로움을 지녔다. 둘 중 어느 곳이 더 좋다고 말하기엔 둘 다 좋다. 오로지 취향의 차이다.

어쨌든 피놀루 빌라를 선택한 이상 최선을 다해 게을러지는 수밖에 없다. 어떠한 죄책감도, 의무감도 없이. 선베드에 똑똑 물 떨어지는 수영복을 걸쳐 말려 놓고 수영장의 샛노란 파라솔 밑에 벌렁 드러누웠다. 다가가면 숨어 버리는 소라게들과 모래사장에 찍힌 이름 모를 새의 발자국. 불규칙한 물결의 흐름. 그리고 바다. 피놀루 빌라는 바다 안의 해조까지 매일 정리하며 관리한다. 그래서인지 물색이 좀 더 투명한 느낌이다. 잠깐 즐기고 말 한순간의 유희로 치부하기엔, 몰디브의 바다는 너무도 맑고 넓다. 이곳에 더 이상 일상의 흔적 따윈 없다. 해묵은 기억도 없다. 오로지 깨끗한 휴식, 순수한 여행,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찌나 다행이던지.

이러나저러나, 어느덧 <히든 스폿>도 4번째 연재를 마쳤다. <히든 스폿>을 쓸 때면 내면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인다. 숨겨진 여행지를 나만 알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과 세상에 소개해야 한다는 여행기자로서의 사명감이 늘 충돌해서다. 이번 연재는 유독 그 대립이 첨예했다. 그래 봤자 승리는 늘 사명감의 편일 테지만.

글·사진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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