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부터 ‘데드덕(권력공백)’ 위기를 맞았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19%로 취임 후 최저를 찍었다. 민주화 이후 임기 반환점을 맞는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 하야, 탄핵이란 단어가 시민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1987년 민주항쟁과 개헌을 통해 우리 사회는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도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권은 민주주의 훈련이 안 된 인물이 대통령이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갖게 되면 사회를 얼마나 후퇴시킬 수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자유란 단어를 35번이나 사용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확대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가 말한 자유는 밀턴 프리드먼의 무정부주의적 자유주의에 그칠 뿐 공화주의적 자유주의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부정식품을 먹을 자유, 120시간 노동할 자유’만 말할 뿐 평등, 공정, 정의 등 자유시민의 존재 기반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노력은 강조하지 않는다. 취임사에서 통합이란 단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 결국 자본과 권력자만 더 자유로워지는 게 아닌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의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시대의 자유민주주의를 닮았다. 윤 대통령은 틈만 나면 야당이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공산전체주의라고 공격한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유주의 세력의 연대를 위해 한·일 과거사는 선제적으로 양보했다. 북한 흡수통일론을 제시하고,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외교도 강화하고 있다. 이승만도 자유민주주의를 미국 주도 냉전체제에 편입되기 위해 한·미 동맹, 반공주의의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 해산하고 친일 청산을 외치던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윤 대통령은 그런 이승만의 복권을 추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친미반공과 이승만의 하이브리드인 뉴라이트 인사들과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그들을 중용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윤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인식 역시 민주화 시대 이전에 머물고 있다. 반말하고 지시하고 격노할 뿐 책임지지는 않는다. 협치는 없다. 여소야대 국회임에도 야당 대표와 대화하지 않고 의회를 통과한 법안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부 거부한다. 여당 대표도 본인이 낙점하고 당정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 윤 대통령 부부 불법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명태균씨는 이런 윤 대통령을 ‘장님무사’에 비유했다. 칼을 잘 쓰지만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고 통제가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윤 대통령은 ‘하마상’이라 대화가 안 된다고도 했다. 박수를 칠 찰진 비유다. 검사 윤석열의 비르투가 대통령 윤석열을 망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정권 2년 반 동안 한국 사회는 뿌리부터 흔들렸다. 헌법이 명시한 민주공화국 체제의 기초와 민주화 이후 37년간 쌓아온 사회적 상식이 무너질 위기다. 대통령 배우자는 법치의 예외가 됐다. 300만원짜리 명품백을 받아도,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돼도 기소조차 되지 않는다. 권력기관은 대통령 옹호 기관이 됐다. 검찰은 대놓고 대통령 배우자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고, 독립 기관인 감사원은 정권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공산주의 혁명 수단이라는 반인권 국가인권위원장, 파업 노동자를 사유재산 제도를 없애려는 공산주의자에 비유하는 반노동 노동부 장관,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하려는 반독립 독립기념관장이 임명되고 있다. 대화 채널이 단절된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로 향해 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지지율 19%에 담긴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끝내 ‘힘들어하는 집사람을 위해 돌을 맞고 가겠다’면 거리는 다시 시민들로 넘쳐날 수 있다. 김건희 특검법을 수용하고, 시대에 뒤처진 국정기조를 전면 쇄신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또한 우리가 교훈으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제도다. 시민들은 이번에도 권력자에게 승리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또다시 통제 불가 대통령을 뽑아 정치적 혼란을 되풀이할 여유가 없다. 일각에선 ‘한국 피크론’이 제기되고, 국제사회는 전간기와 유사한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개헌을 통해 정치 시스템을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