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와 방귀 트면 친해지는 걸까요”…억압·불편과 친밀함 역설 [뿡, 뿡, 뿌웅∼ 방귀 이야기]

2025-01-27

(1) "'억압' 아닌 '예의'"…시대 정서 따라 변해 온 '방귀' 인식

냄새에 얼굴이 빨개지는 방귀. 때론 ‘뿌웅’하는 큰 소리에 웃음보가 터지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가족들 간에도 조심해야 한다며 참지만, 아이들은 그 소리에 거리낌 없이 ‘까르르’ 웃습니다. 명절 기름진 음식을 먹다 보면 더 많아지는, ‘참으면 병이 된다’고도 여겨지는 방귀는 건강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전래동화부터 창작 동화에 이르기까지 자주 다뤄지는 소재인 방귀. 설을 맞아 원초적, 사회적, 역사적, 생리적인, 참을 수 없는 방귀 얘기를 빵 터트립니다. 편집자 주

“결혼해서 법적 관계를 ‘땅땅땅’ 맺었어도 제 부모∙형제처럼 편해지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나요? 아직 그런 관계가 아닌데 방귀를 뀌면 그 누구라도 불편하죠, 하물며 시아버지인데…”

“저희 아버님은 제 앞에서 한 번도 방귀 뀌신 적 없으세요. 아마 실수로 하시면 굉장히 민망해하실 것 같아요.”

“생물학적 현상이라며 아버님이 가끔 방귀를 뀌시는데 저는 매우 불편하더라고요.”

방귀를 주제로 한 ‘시가(媤家)’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인의 인식 변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00년 전 며느리와 오늘날 며느리의 가치관은 근대에서 현대로 시대가 흐른 만큼이나 극명하게 다르다.

방귀를 튼 사이는 편한 관계가 맞지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방귀를 튼 상황에 대해 대부분의 며느리는 그 대상이 시아버지라 할지라도 무례함을 느낀다.

100년 전 여성 방귀는 ‘금기’

100년 전 이 땅의 며느리에게 시아버지의 방귀는 하늘과 같은 권위였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소재로 한 구전 민담에는 방귀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다.

그 대표작인 ‘방귀쟁이 며느리’는 ‘별난 방귀를 뀐 며느리’, ‘며느리 방구소동’, ‘방구 뀌는 것이 소원인 며느리’ 등 제목을 달리하며 전국 각 지역에서 구전돼 이어졌다.

이때의 방귀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며느리 여성을 억압하는 금기에 해당한다. 원초적 배설을 타인과 공유할 때 발생하는 인류 공통의 수치심을 넘어, 며느리 여성에게만 특별하게 더해진 억압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서를 토대로 과거 민요에 등장하는 방귀는 사람에 따라붙는 별칭도 달랐다.

시아버지 방귀는 ‘호령 방귀’, 시어머니 방귀는 ‘잔소리 방귀’, 남편 방귀는 ‘유세 방귀’(유세 떤다는 의미) 또는 ‘난봉 방귀‘(난봉꾼을 의미), 머슴 방귀는 ‘재산 방귀’, 그리고 며느리 방귀는 ‘도둑 방귀’였다. 방귀도 남몰래 도둑처럼 뀌어야 하는 여성의 현실이 반영된 용어였다.

현대,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오늘날 현대 여성이 보면 조선의 방귀 콘텐츠는 가부장제 산물로 보이겠지만, 이야기 속에서 여성이 결국 방귀를 뀌게 되는 서사구조가 유행하게 된 건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로, 변화하는 시대 정서가 반영됐다고 한다.

하지만 근대를 지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이제 시댁에서의 방귀가 갖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결혼 15년 차인 40대 한 여성은 “시댁에서 방귀를 뀌지 않는 건 제가 억압돼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된 건 맞지만, 저는 며느리나 사위는 자식과 달리 어떤 계기로 인해 멀어질 수 있는 손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서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에 결혼을 앞둔 20대 후반의 한 여성은 “결혼으로 양가가 얽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저는 부부를 중심으로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며 “만약 시댁에 갔는데 시아버지나 시어머니가 불가피한 실수가 아니라 대놓고 방귀를 뀌신다면 불쾌함을 느낄 것 같다”고 했다.

결혼 7년 차인 30대 한 여성은 “저는 외롭게 자라서 결혼을 통해 가족이 늘어나는 게 좋았다”며 “하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였던 부모님과 달리 성인이 돼서 만난 시부모님과는 서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인 관계서도 조심… 친밀함 느끼기도

방귀 뀌기에 있어 현대 남녀의 차이는 크지 않다.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경우 남자나 여자를 불문하고 방귀 뀌기를 주저한다. 다만 남성의 생리 현상 분출이 여성보다는 여전히 소폭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전국 20~30대 미혼남녀 71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남성의 57.1%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생리 현상을 참아야 한다’고 했고, 여성은 68.9%가 같은 응답을 선택했다. 그 이유로 남녀 모두 ‘상대를 배려하는 기본 매너’를 1순위로 꼽았고 ‘함께 있는 동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방귀를 참을 수만은 없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연인이 1년 이내에 서로 방귀를 트는 것으로 나타났고, 10명 중 1명만 1년 뒤에도 연인과 함께 있을 때 방귀를 뀌지 않는다고 답했다. 부부 중에서도 생리 현상을 참거나 감추는 사례도 가끔 있다.

감추는 것만이 정답이라곤 할 수 없다. 핀란드 탐페레대학 논문에 따르면, 안정적인 관계에서는 방귀가 허용될 수 있다. 방귀는 때론 난처한 상황을 만들지만, 유머와 공감을 통해 인간관계를 강화하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방귀에 대한 진지한 사회학적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1980년 출간된 리프만의 ‘방귀의 사회심리학을 향하여: 자연적 가스의 대인 규제’에 따르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소리가 큰 방귀는 ‘유머러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여성보단 남성들이 그런 경향이 강했다. 방귀가 고의적일 때, 특히 냄새가 심한 경우엔 ‘악의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여성들은 우발적인 방귀에 남성들보다 더 관대했다. 방귀는 소리보단 냄새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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