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2025-01-26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모두가 스마트폰 안에 각자의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시대다. 알고리즘이 사용자 취향에 맞춘 판을 세팅해준 덕에 나의 정치적 성향, 소비 패턴, 취미와 관심사가 최우선으로 반영된 온라인 세상 속에 빠져 지낸다. 출퇴근 대중교통 안에서도, 카페에 마주 앉은 직장 동료도, 한집에 사는 가족들끼리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순간 철저히 분리된 다른 공간을 사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 그 속에서 우리와 다른 생각, 우리를 반대하는 근거는 설 자리가 없다. 익명의 동질화된 집단이 각자의 렌즈로 왜곡된 세상을 찍어내고 있다.

문제는 유튜브와 SNS의 역할이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주장이 순식간에 진실로 둔갑해 대중을 선동하는 데에 쓰이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유튜브는 가장 강력한 대중 동원 수단이자,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플랫폼이 됐다.

유튜브에 쏟아지는 영상의 양과 속도도 어마어마해 일단 영상이 공개되고 나면, 그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이미 중요치 않다. 거짓된 정보를 퍼뜨리는 쪽도 거리낌이 없고, 시청하는 사람도 진실을 가려내려 하지 않는다. 논란이 되는 주제에 대한 토론과 숙의의 과정이 자리잡을 시간도 없다. 듣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해주고, 그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여 “역시 우리 생각이 맞았어”라는 결론에 도달할 뿐이다.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대통령과 그 지지 세력이 ‘극우 유튜브’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주장한 비상계엄의 근거는 상당 부분 극우 정치 유튜브에서 주장해온 내용과 동일하다. 윤 대통령은 새해 첫날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국회와 언론이 대통령보다 훨씬 갑”이라고 말한 대통령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언론보다 본인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준 극우 유튜브야말로 얼마나 기대고 싶은 언덕이었을 것인가.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상대방을 비하하는 일방적인 주장이 그대로 전파되어 사람들을 선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사회 갈등이 얼마나 극심한 양상으로 반복될 것인지 우려하게 된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을 가장 친숙한 매체로 접하며 성장해온 세대가 사회의 대다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유튜브와 SNS는 더 절대적 영향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청소년들의 SNS 중독 증상은 전 세계적 문제가 되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휴대폰 번호가 아닌 인스타그램 계정을 주고받는 것이 연락처를 공유하는 방법이며, 콘텐츠를 접하는 가장 중요한 플랫폼은 유튜브다. 대면보다 비대면을 훨씬 선호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와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최근 호주와 유럽 등에서는 10대의 SNS 사용을 규제하는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SNS 사용을 규제해서 부작용을 일부 줄일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 대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튜브와 SNS와 단절해서 세상을 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가장 필요한 교육은 많은 영상 속에서 쏟아지는 주장들의 근거가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검증해서 가려내고, 비록 반대되는 생각이라도 수용할 만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내 주장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비판적 사고와 태도다.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이해력) 교육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일부 학년에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한다. 학생 수준에 맞는 맞춤형 학습을 제공해 학습 격차를 줄일 수 있고 교육 형평성도 제고할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그러나 AI 교과서가 학습 효과를 얼마나 높일지 확신할 수도 없을뿐더러 학교마저 ‘개인 맞춤형 학습’을 표방했을 때 나타날 다른 부작용도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지나친 개별화로 각기 다른 세상을 사는 시대에 공교육 현장인 학교야말로 대화와 토론이 살아나고 각기 다른 성향과 학습 수준의 학생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올바른 정보를 가려내고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로의 회복을 위해 AI 교과서가 아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부터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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