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언도 성소수자를 지울 수 없다

2025-01-26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미국 성소수자 지원단체에 상담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외로움과 고립감, 누군가의 표적이 되거나 신체적 해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긴급 상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2개월 만에 현실이 되었다. 트럼프는 취임했고, 부자들과 권력을 가진 자들만 초대된 화려한 취임식 모습은 평화, 환경, 인권 등 모든 영역에서의 후퇴와 인간 존엄에 대한 위협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트럼프는 취임식이 개최된 날, 약 100건의 행정명령을 단행했다. 남성과 여성 두 성별(sex)만 인정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임을 선언했고, 연방정부 내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을 폐기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성을 젠더 이데올로기 극단주의로부터 보호하고, 생물학적 진실을 회복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으로 인해 트랜스젠더는 곧 거짓된 사람이자, 여성에게 위협을 가하는 잠재적 가해자가 되었다. 앞으로 트랜스젠더의 삶은 공적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내란, 체포, 구속에 이어 최근 서울서부지법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를 보며, 소수자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평등의 가치를 위협해 온 사람들의 존재를 다시 주목하게 된다. 극우적 성향을 보인 이들은 더 이상 예배를 빙자해 차별금지법 반대만을 외치고 있지 않다. 위법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 행동은 언제든지 소수자에게 향할 수 있다. 양손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오롯이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나선 이들이 트럼프가 내세운 극단의 혐오와 만난다면, 한국도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2024년을 마무리하며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은 상담과 지원 실적을 정리했다. 총 4733건의 문의, 537건의 상담, 552건의 위기 지원. 이 중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청소년의 상담과 위기 지원 비율은 62.1%, 64.5%에 달한다. 심리상담과 의료지원 횟수는 압도적으로 높다. 단체 설립 이후 가장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했지만, 이 같은 슬픈 결과가 위기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든다.

트럼프가 취임한 다음날 열린 국가기도회에서 성공회 주교 한 명이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성소수자 아동, 난민, 이민자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지극히 당연하고 간절한 요청에도 트럼프는 형편없고,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난했다. 두려움에 맞서 분투하며 살게 될 미래는 성소수자들에게 너무 가혹하고 불투명하기만 하다. 2025년, 우리가 맞이할 세상은 자비를 구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서로를 돌보고 안전을 책임지며 나가는 것, 그 어떤 선언도 존재를 지울 수 없다고 외치는 것, 혐오에 절대 질 수 없다고 다짐하는 것. 그렇게 2025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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