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옥중 서신

2025-01-26

“미친 운전자가 인도로 차를 몰아 사람들이 죽어갈 때는 그 미친 운전자를 먼저 끌어내려야 한다.”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 서신 내용이다. 여기서 퇴출해야 할 미친 운전자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통이다. 본회퍼는 결국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가 발각돼 종전 한 달 전에 처형됐다. 그가 1943년 체포된 후 친구와 가족에게 보낸 서신은 ‘옥중 서신―저항과 복종’이라는 책으로 출간돼 행동하는 종교인과 지식인의 필독서가 됐다. 물질과 세속권력 앞에 무릎 꿇고 비굴하게 사는 것을 거부한 본회퍼야말로 진정한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성인이 아닐까.

인도 초대 총리 네루는 딸에게 196통의 옥중 서신을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독립운동을 하다 아홉번이나 감옥에 갇힌 그는 아내마저 수감되자 1930년부터 약 3년간 외동딸 인디라 간디에게 수많은 서신을 보냈다. 집에 13살 난 딸만 남았으니 걱정과 그리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아버지의 서신을 통해 역사의식과 독립정신을 키운 딸은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다. 네루의 서신을 모은 명저 ‘세계사 편력’은 옥중 서신의 백미로 꼽힌다.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년)는 옥중 서신의 원조격이다. 그에게 감옥은 사유와 사색의 공간이었다. 11년 옥살이를 하다 숨진 그의 서한집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고뇌하고 저항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숨김없이 드러내 울림을 준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윤석열의 편지’에서 “설날이 다가오니 국민 여러분 생각이 많이 난다. 여러분 곁을 지키며 살피고 도와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도 26일 윤 대통령 체포와 관련해 옥중 서신을 통해 “22대 총선 구호인 ‘3년은 너무 길다’가 실현되고 있다”며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봄을 앞당기자”고 했다. 반성은커녕 옥중 서신을 통해 지지층 결집에 나선 행태들이 볼썽사납다. 김대중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옥중 서신은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견인한 투쟁 수단이었다. 민주주의와 사법정의를 훼손한 윤 대통령과 조 전 대표가 옥중 서신의 긍정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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