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혼돈’ 넘어 체제 전환 꿈꾸자

2025-01-26

12·3 불법 계엄 이후 혼돈 상태를 보면 마음이 답답하고 복잡해진다.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으로 이 사태가 종식되지 않을 거라는 조짐이다. 대통령 구속으로 이 난동이라면, 대통령 파면은 어떨까? 조기 대선을 치른다고 해도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 확정 전에 치르는 대선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모두, 사태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사태의 시작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만든 진영의 골이 깊고 넓다. 이제는 진실이 아니라 어느 편이냐가 중요하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이 불법 계엄으로 나라를 일거에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리고도 관저에서 구치소에서 버티는 것도,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국회에서 관저 앞에서 감싸고 받드는 것도 다 기댈 진영이 있어서다. 극우 진영이 이들을 지지하고 이들은 극우 진영을 선동한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와 법원 난입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범죄를 정당화하는 음모론이 유튜브에서 판을 친다.

최근 한국갤럽, 리얼미터, 전국지표조사(NBS)의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1·2위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탄핵 정국 속에서도 정권 연장 응답(48.6%)이 정권 교체(46.2%)보다 많았다. 이를 두고 지지층 결집, 착시, 민주당 불신 등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윤석열과 국민의힘 지지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지금

‘아스팔트 우파’나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이들은 주로 가난한 노년층이다. 여기에 사회 진입의 어려움 등으로 박탈감이 쌓인 청년도 가세한다.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으로 소외될수록 사회에 대한 분노가 쌓인다. 이들은 자기들에게 내미는 손을 잡고 그 손이 가리키는 쪽으로 분노를 터뜨린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은 가난한 노년층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신남성연대나 반공청년단 같은 단체는 배회하는 청년층을 흡수하려고 한다. 세상에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는 게 환대라면 극우 세력의 준동은 기존 정당, 특히 약자의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이 환대의 정치에 소홀했거나 인색했다는 방증이다.

국회와 선관위와 법원 공격은 이곳이 모두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를 뜻한다. 위기 이전과 이후는 같지 않다. 지금보다 더 좋아지거나 나빠진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여러 차례 정치적 위기를 극복했지만, 이 위기를 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기회로 만들지는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이번에는 윤석열 하나 끌어내자고 광장에 나온 게 아니라는 목소리가 일찌감치 나왔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우리나라를 흔히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규정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시장 경제가 끌고 가는 민주주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다. 이번 겨울 앞장서 광장을 열고 있는 청년 여성, 노동자, 농민,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은 계엄 이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미 삶의 자리를 빼앗기거나 위협받았다.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헌법 조문 하나 바꾼다고 이들의 삶이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짜 문제는 윤석열을 넘어 체제를 지목한다. 자유민주주의의 ‘민주주의’에 속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 앞의 자유는 윤석열이 말했듯이 부정식품이라도 싸게 먹을 수 있는 자유다. 굶을 자유, 강요된 자유다. 이 자본주의 자유는 평등과 존중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이고 실질적 자유를 앗아간다.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민주주의’가 절실하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은 더 깊어진다.

광장의 평범한 사람들이 희망

위기 때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번 사태에서 대통령은 물론 정부, 국회, 군대 고위직 인사의 면면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대개 서울대와 육사 출신으로 나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고위직에 오른 최고 능력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계엄이 실패하고 위기가 닥치자 자기 안위 챙기기에 급급하다. 영혼과 양심을 상실한 인간, 명령받은 대로 했다는 자발적 복종의 인간, 아래로 위로 서로 책임을 미루는 비루하고 비겁하고 비열한 인간. 우리나라 엘리트의 면면이다. 학교 교육의 참담한 실패다.

희망은 있다. 광장에 ‘나 하나’라도 채워서 위태로운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엄동설한에 밤을 밝히는 평범한 사람이 희망이다. 우리 학교는 민주시민 양성에 얼마나 힘써왔는지 반성해야 한다. 학교 안팎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강화하여 일찍부터 자유와 평등, 참여와 연대 등의 자질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교육으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균열을 내자. 교육에서 체제 전환의 물꼬를 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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