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트럼프發 불안에… ‘대중 강경노선’ 결집 나선 대만 [세계는 지금]

2025-05-17

취임 1년 맞은 라이칭더 대만 총통

대만 내 정치적 기반 약화 상황 속

전임 차이잉원보다 대중경계 뚜렷

‘안보위기 프레임’ 지지층 결집 노려

親中국가와 거리두고 美·日과 연대

日과는 경제 넘어 안보연계 염두도

국방도 방어위주서 능동적 억지전략

“과거보다 높은 자위권 행사 가능성”

내부선 독립 가속發 안보위기 우려

젊은층 중심 징병확대 반감도 확산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20일 취임 1년을 맞는다. ‘친미·독립’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가 ‘현상 유지’를 내세운 지 1년,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 일본 등 민주 진영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을 노골적으로 적대 세력으로 지칭하는 행보는 중국의 군사·외교적 압박을 자극하며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입법원(국회) 의석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여소야대 정국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이라는 이중의 불확실성 속에서 라이 총통은 대중 강경 노선으로 민심 결집을 도모하는 모양새다.

◆현상 유지 외치지만… 실제는 대결 구도

라이 총통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중화민국(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겉으로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사실상 독립을 명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중국은 즉각 대규모 군사훈련과 대만 관세 감면 중단, 외교 고립 캠페인으로 대응했다. 대만에서도 지난 3월 중국을 ‘역외 적대 세력’으로 공식 규정하는 ‘5대 국가안보·통일전선 위협 및 17개항 대응 전략’이 수립됐다.

라이 총통은 현상 유지를 내세웠지만 실제 행보는 독립 노선 강화와 중국과의 전략적 단절을 향해 명확하게 움직여왔다. 이는 전임 차이잉원 정부보다도 한층 더 뚜렷한 대중 경계 노선으로 평가된다. 차이 전 총통이 “현상 유지는 가장 강력한 선언”이라며 모호성을 전략으로 활용했던 반면, 라이 총통은 보다 노골적인 언사와 정책을 통해 독립국가로서의 대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친중 국가와의 거리 두기를 강화하는 상황이다. 중남미·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에 기우는 흐름에 맞서 미국·일본·유럽연합(EU)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특히 일본과의 협력은 과거보다 더 공세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과 양국 간 반도체 공동 프로젝트 등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안보 연계까지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된다.

국방 분야에서는 대만군의 대응 기조가 방어 위주에서 점차 능동적 억지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실사격 훈련과 에이태큼스(ATACMS) 도입은 중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수단 확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이다. 특히 올해 들어 대만 국방부가 처음으로 ‘중국의 2027년 침공’을 공식 시나리오로 상정하고 연례 군사훈련 계획을 세운 것은 현 정부가 안보 상황을 극도로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만 국내 산업 구조 전환은 ‘탈중국’ 기조에 맞춰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전략 산업에서 중국산 부품 및 원자재의 대체율을 끌어올리는 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미국·일본과의 기술 협정 및 투자 유치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TSMC의 미국 내 추가 투자와 함께 대만 내 공급망 자체를 서방 진영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구상도 병행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라이 총통의 1년은 현상 유지보다는 중국과의 분리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AI 분야의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재편하겠다고 공언했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의 인터뷰에서는 “중국은 자유무역을 가장한 정부보조금 체제”라고 직격했다. 그는 대만과 일본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CPTPP 가입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탈중국 공급망을 구축해 중국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이런 대만의 움직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라이 총통의 취임 직후부터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반복했고, 남아 있는 대만의 12개 수교국을 겨냥한 외교전도 강화했다. 중국 각 부처도 성명을 통해 “대만 독립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며 군사적 행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국내외 정치 불안 강경노선 배경

라이 총통의 대중 강경 노선은 대만의 정치 지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해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득표율은 40.05%로 차이 전 총통의 두 차례 선거(2016년 56.12%·2020년 57.13%)보다 크게 낮았고 입법원 다수당 지위도 야당인 국민당에 내줬다. 여기에 야당 의원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 탄핵 논의까지 맞물리며 정치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총통 선거와 같이 치러진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전체 113석 중 51석을 확보했지만 국민당(52석)과 민중당(8석)이 연합할 경우 입법 주도권은 야권에 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의회개혁법 통과를 계기로 여야는 물리적 충돌을 빚었으며 예산안 삭감과 각종 입법 저지전이 이어지고 있다. 민진당은 야당 의원 파면 운동을 벌이며 정국 반전을 노리고 있고, 야당은 총통 탄핵까지 언급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라이 총통의 집권 안정성이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치적 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강경한 대중 노선은 안보 위기 프레임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총통 지지율은 48% 수준으로 하락했고, 집권 만족도는 처음으로 ‘불만족’ 응답이 ‘만족’을 웃돌았다. 반면 대중국 강경 대응에 대한 지지는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 정세 역시 라이 총통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대만을 방어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회귀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했고, 한·미·일 공동성명에서도 표현 수위가 조정됐다.

이에 라이 총통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실리를 챙기려는 모습이다.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반도체 수출 등을 통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밝혔고, “대항하지 않고 협상으로 관세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략적 안보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충돌은 회피하려는 노선이다. 이는 중국과의 대결과는 다른 차원의 실용 외교로 풀이된다.

◆양안 갈등 고착화… 탈중국의 이면

현재의 양안 관계는 단순한 정권 간 충돌이 아니라 정치 체제와 가치관의 대립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바탕에 있다. 라이 총통은 닛케이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은 민주주의 체제와 전제 독재 체제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는 단지 대만 독립의 문제를 넘어 중국이라는 정치체제에 대한 대만 사회의 거부감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독립을 향한 정체성 강화가 실질적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 내부에서도 무력 충돌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경제적 불확실성과 징병 확대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대만 사회 내부의 합의와 안정적 정체성 확보다. 탈중국 전략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외부와의 연대에 기대는 것을 넘어 대만 내부의 정치적 통합과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여소야대 정치 구도와 갈라진 여론 속에서는 정책 일관성 유지조차 쉽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만이 외교적·군사적 공간을 넓히기 위해선 국내 정치의 안정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가운데 대만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군사적 억지력과 국제적 연대를 동시에 강화하면서도 무력 충돌은 피해야 하는 복잡한 줄타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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