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울림(이명)은 자기 귀에는 들리지만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다. 코골이(비한)는 본인은 못 듣지만 다른 사람은 듣는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공작관문고 자서>에서 이명을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비한을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 비유했다. 연암은 글쓰기 태도를 논하며 이명·비한을 거론했지만, 이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명은 ‘나잘난병(病)’에, 비한은 ‘나몰라병’에 비유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이명·비한은 일상에서 큰 문제가 아니고 치료도 가능하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나잘난병’ ‘나몰라병’은 여간해선 고치기 힘들다.
배철수씨가 지난 9일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을 하면서 “현대인의 난치병 중 하나가 ‘난가병’(나인가? 병)”이라고 언급해 화제다. 그는 “객관적 자기 평가를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병한다”며 “보통 사람들은 ‘난 아니야’ ‘난 그런 그릇이 못 돼’ 하면서 주제 파악을 잘하는 걸로 난가병을 예방한다”고 했다. 배씨는 그러면서 교황 선출 과정의 암투를 다룬 영화 <콘클라베>를 소개했지만 청취자들은 자연스럽게 6·3 대선에 뛰어든 주자들을 떠올렸다.
선거 때면 여의도 정치권에 ‘난가병’이 창궐한다. 과거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음 당대표는 나인가’라고 엉덩이 들썩거리며 난가병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조기 대선이 다가오자 ‘다음 대통령은 나인가’라는 난가병이 유행하고 있다. 발병 원인은 제각각이다. 아스팔트 극우의 환호성에 자극받아서, 큰 선거판을 체질적으로 지나칠 수 없어서, 절대 강자가 없으니 가능성이 있을 듯해서… 여의도 밖에 있어도 ‘당신밖에 없다’는 회유에 휘둘리면 덜컥 난가병에 걸릴 수 있다.
보통 사람들도 자신에게 유리한 건 부풀리고, 불리한 건 축소하고 싶어 한다. 정치인은 대체로 그런 경향성이 더 강하다. 자신의 한계에 무지하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정치인은 난가병 고위험군이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대통령이 되겠다면 그 무게를 감당할 능력과 자격을 갖췄는지, 주권자인 국민들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국민들 눈에는 누가 난가병을 앓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