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가을, 변화가 만드는 조화

2024-10-01

1888년, 프랑스 화가 카미유 피사로는 비틀린 사과나무 한그루에서 사과를 따는 농부들을 화폭에 담았다.

화가는 한해의 전환점인 가을을 배경으로 한 그림에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화풍을 녹여냈다. 중앙에 자리한 사과나무 밑 짙은 그림자는 빨간색·파란색·녹색뿐만 아니라 분홍색·라벤더색·주황색·노란색 등 다양한 색점으로 묘사돼 있다.

1889년과 1890년 벨기에 브뤼셀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처음 본 비평가들은 점묘법을 사용해 빛을 전달하는 피사로의 방식에 깊이 감명받았다.

이 그림 속에는 여러 차원의 조화가 존재한다. 사과를 수확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조화가 있고, 그림자는 물론 그 안에 담긴 인물과 사과나무의 구부러진 형태가 균형을 이루는 조형적 조화가 있다. 깊게 구부러진 고랑이 있는 저 너머의 들판은 그 자체로 지평선의 곡률, 더 나아가 지구 자체와 균형을 이룬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점의 형태로 여러 색깔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피사로는 파리 북부에 있는 에라니(Eragny)의 과수원에서 색깔과 빛, 날씨와 대기의 미묘한 변조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기법을 끊임없이 실험했다. 과수원은 한해 주기에 따라 땅을 일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소재이자 배경이었다. 노동이라는 주제는 반부르주아적 태도로 자본주의와 급속한 근대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던 화가의 정치적 견해와도 관련이 있다. 피사로는 1881년부터 1888년 사이에 비슷한 그림을 세점 그렸는데 구부러진 가지가 있는 사과나무의 형태에 주목해 신중하게 화면을 구성했다. 이 작품은 화가가 수년간 시도한 실험의 정점이며, 눈에 보이는 실제 세계와 화가만의 특별한 감각이 이뤄내는 조화의 종합체라는 느낌을 준다.

“매년 9월과 10월이 되면 감각이 되살아난다”고 한 피사로는 가을이라는 계절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진정한 수확은 양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 소출의 결과라기보다는 끊임없는 변화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조화의 과정일 테다. 빠르게, 많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꾸준히 색점을 찍어 올리던 한 화가의 뚝심에 대해 생각한다.

박재연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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