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제 삶의 특징 일부를 상처내고 내려놓는 일이다. 환경에 적응하려면 제 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때로는 자신이 할 수 없던 일도 해야 한다. 자기만 고집해서는 살아갈 수 없다.
경남 하동 악양 들녘을 내다보는 지리산 자락의 축지리 대축마을 뒷동산에 서 있는 ‘하동 축지리 문암송’은 그 사례를 보여주는 특별한 나무다. 천연기념물인 이 소나무는 4m쯤 솟아오른 너럭바위 위에서 자라는, 볼수록 경이로운 나무다.
누구는 이 소나무의 나이가 300년 됐다고 하고, 또 누구는 600년도 넘었다고 한다. 나무 나이를 정확히 가늠하는 게 불가능해서다.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물 한 방울 스미지 않는 바위 위에서 살아와 여느 소나무와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극한 환경에서 나무는 바위를 쪼개고 파고들어 뿌리를 내렸다. 거대한 너럭바위는 쩍 갈라졌다. 쪼개진 바위의 틈 안 허공에서 뿌리는 바위의 한쪽을 붙들어 안고 몸피를 키웠다. 바위를 쪼개느라 생살이 찢기는 아픔을 감수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이 커질수록 쪼개진 바위의 틈은 더 벌어지고 언젠가는 버티고 설 자리를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나무는 알았다.
결국 나무는 언제나 뿌리를 아래로 뻗는 소나무 특유의 성질을 내려놓았다. 나무는 언제부턴가 바위틈 위쪽에서 수직의 바위틈으로 뻗은 뿌리보다 더 굵은 뿌리를 옆으로 펼치며 쪼개져가는 바위를 붙잡았다.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한 변증의 안간힘이다.
긴 세월 동안 문암송은 여느 소나무처럼 봄에 송홧가루 날리고 가을에 솔방울 맺으며 견고한 바위 위에서 제 몸을 키워 이제는 나무높이 12m, 가슴높이 줄기둘레 3m의 훤칠한 소나무가 됐다.
얼핏 봐서는 바위 위라는 극한 조건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애 처음부터 지금까지 겪어왔고, 앞으로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그의 얄궂은 운명을 알기 어렵다. 가까이 다가서서 자세히 볼수록 한 그루의 나무가 경이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