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유럽·캐나다 등 세계 각국이 미국에서 이탈하는 과학 인재를 잡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에 체류 중인 한국 이공계 유학생이 1만 명이 넘는데도 이들을 국내로 유인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인공지능(AI), 양자, 우주 등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 인재가 부족한 터라 파격적인 인센티브나 연구 지원 등을 통해 이들을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5일 발표한 ‘2024년도 이공계 유학생 국내외 체류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외 체류 중인 이공계 한국인 유학생은 총 2만 9770명이다. 이 중 약 45%가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유학생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이나 과거 시위 참여 이력을 근거로 비자를 취소하거나 추방하는 사례가 늘며 한국 유학생을 포함한 해외 연구자들이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실제로 휴스턴대에서는 수학과 조교수로 일하던 한국인 교수가 “비자가 갑자기 종료돼 즉시 귀국해야 한다”는 e메일을 학생들에게 보냈고,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UW-Madison)에서 박사과정 중이던 또 다른 한국인은 과거 경범죄 이력으로 학생 및 교환 방문자 정보 시스템(SEVIS) 기록이 별다른 설명 없이 종료돼 미국 국토안보부(DH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같은 조치는 한국 유학생뿐 아니라 전 세계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130여 개 대학에서 1000여 명의 유학생 비자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신분이 불안정해지자 많은 유학생들이 자국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 이동을 고민하고 있다. 이에 프랑스와 캐나다는 발 빠르게 해외 유학생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국립대는 올 3월 ‘과학의 안식처(Safe Place for Science)’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현재 해당 프로그램에는 약 300명이 지원했으며 이 중 절반가량이 미국 국적자인 것으로 전해진다. 캐나다의 토론토 보건의료네트워크(UHN)는 ‘캐나다 리드 100 챌린지(Canada Leads 100 Challenge)’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초기 경력 과학자 100명을 캐나다로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두 국가는 모두 미국의 현재 상황을 정책 설계 배경으로 명시하며 인재 유치에 나선 상태다. 중국 역시 다양한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외 과학자를 끌어들이고 있으며 푸단대의 경우 최근 학사 학위만으로 박사과정에 지원할 수 있도록 입학 조건을 완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과 달리 한국은 아직까지 명확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2~3월 4대 과학기술원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해외 인재 유치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관련 정책은 내년에 시행될 ‘5차 과학 인재 육성 기본 계획’에 반영될 예정으로 현시점에서 구체적인 실행력은 부족한 상태다. 현재 운영 중인 해외 인재 유치 프로그램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해외 우수 과학자 유치 사업(브레인 풀)은 2023년 183명을 선정했지만 2024년에는 예산 삭감으로 인해 119명으로 줄었다. 연간 6억 원을 지원하는 ‘브레인 풀 플러스’ 프로그램은 2023년 3명, 2024년에는 1명만을 선정했다. 올해는 5명으로 규모를 늘릴 계획이지만 추진 속도가 늦어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추경으로 해외 우수 대학 박사급 연구자 등을 초빙하는 ‘AI 패스파인더 프로젝트’를 신규로 추진한 바 있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AI 관련 연구자에게만 국한될 뿐이다.
과학계에서는 “해외 이공계 인재가 국내에 와서 연구할 환경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국내의 한 출연연 연구원은 “현재 하버드를 포함한 아이비리그 대학에서도 한국인 유학생과 학자들이 신분 불안을 겪고 있지만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국내 연구비와 인건비 규모가 작고 정부가 삭감한 연구기관 예산도 아직 회복되지 않아 차라리 캐나다나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것을 고려하는 분위기”라고 상황을 전했다.
막상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해외에서 진행하던 연구와 커리어를 이어갈 만한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애써 유치한 인재가 다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나온다. 최근 정부가 주도한 간담회에 참석한 국내 출연연 관계자는 “석학급 인재를 유치하려면 해외에서 자신이 구축한 연구를 이어서 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한데 정부가 이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며 “연구 장비를 곧장 한국에 들여와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간소화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 빠르게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