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체포용 軍 ‘플라스틱 수갑’ 뭐지…계엄군이 소지했다?[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2024-12-09

지난 2003년 12월 13일 오후 8시 30분 미군이 이라크 티크리트 근처 한 농가에 들이닥쳤다.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붉은 새벽(Operation Red Dawn)’작전으로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아드다우르 인근 농가였다.

미 정보당국이 입수한 후세인이 9개월 동안 숨어 지낸 은신처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고 농가 외딴 구석 바닥에 이상한 스티로폼 덮개를 발견했다. 덮개를 들춰내자 비좁은 지하 통로가 드러났다. 특수부대 대원이 빠르게 진입했고 장전된 권총을 들고 있는 한 남자가 마주쳤다.

한 대원이 수류탄을 던지겠다고 위협하자 이 남자는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영어로 얘기했다. “나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다. 협상할 의향이 있다.”​ 그러자 특수부대 장교는 “부시 대통령이 안부를 전합니다”라고 회답했고 대원들에게 체포를 지시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그는 여느 이라크 범죄자가 체포되듯이 손목에는 ‘플라스틱 수갑(Plastic handcuffs)’을 차고 머리는 검은색 두건이 씌워진 채로 체포됐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주요 외신들이 긴급 기사로 타전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군 특수부대가 주요 요인을 체포하거나 납치할 때 쓰는 군용 플라스틱 수갑이 처음으로 대서특필 된 것이다.

21년이 지난 2024년 12월 4일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후 계엄군이 위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 진입과 함께 정치인 체포조도 함께 난입하는 사건이 해외 토픽으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더욱 놀라운 건은 이튿날 4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 탄핵추진 비상시국대회’를 개최하면서 계엄군이 두고 간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개한 ‘플라스틱 수갑’이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체포될 당시에 사용됐던 군용 플라스틱 수갑도 유사한 제품이다.

군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수갑은 ‘케이블 타이(cable tie)’라고 부른다. 납작한 형태의 플라스틱 끈으로 끈 끝에 있는 구멍에 다른쪽 끝을 통과시켜 꿰는 방식이다. 끈 표면에는 미세하게 홈이 나 있어 이 홈과 구멍에 있는 핀이 맞물려 한번 끼우면 더 이상 빠지지 않는 역진방지장치다.

케이블 타이는 1958년 항공기 정비에서 탄생했다. 제트엔진 시대가 들어서면서 항공기의 구조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전기·전 자시스템이 정밀해질수록 이에 비례해 전선의 양도 증가했다. 배선·정리 작업의 필수품은 끈이었다. 정비사들은 왁스 칠한 린넨 혹은 나일론 소재의 끈을 사용해 전선들을 감고 매듭을 묶고 조이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이런 탓에 배선 정리 작업 때문에 항공기 정비 시간은 길어지고 품질 불량도 잦아지면서 정비사들도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1956년 미국의 전기 설비 전문 기업인 토마스앤베츠(지금은 스위스 ABB 산하)에서 근무한 모리스 로건은 보잉의 제조 시설을 방문했다가 배선 정리의 난제를 해결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후 2년에 걸친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듭해 내놓은 것이 바로 케이블 타이의 전신인 ‘타이 랩(Ty-Rap)’이다.

처음에는 내구성이 뛰어난 나일론66 소재의 끈과 금속 고정구가 결합한 형태였지만 이후 개선을 거듭해 고정구까지 모두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개량품이 등장다. 현재의 케이블 타이의 모습은 이때 완성됐다.

플라스틱 수갑은 개당 500원도 안 해

가볍고 편리하고 기능적인 케이블 타이는 등장 이후 항공 정비는 물론 모든 산업 현장과 가정, 심지어 우주까지 활용 무대가 대폭 넓어졌다. NASA의 화성 무인 탐사차 큐리오시티가 화성에서 보내온 사진에서 몇몇 부품을 고정하고 있는 게 케이블 타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총 25억 달러(약 3조 56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 개당 30센트(425원)도 안 되는 케이블 타이가 전선 지탱용으로 쓰여다는 사실이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그 활용도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내열·내방사선·내화학성이 뛰어난 테프젤(ETFE) 소재 케이블 타이는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쓰이게 됐다. 역시 개당 몇 백 원 수준이다.

이처럼 가격이 저렴하고 무게는 가볍고 묶기가 쉽지만 풀리지도 않는 가성비가 뛰어나 이 같은 조건을 바탕으로 한 케이블 타이는 군 특수부대 작전에 필요한 수갑으로 최적의 장비였다.

사람의 신병을 구속하고 행동을 제한하는 형구인 수갑은 당초 금속 재질이 보편화돼 있었다. 하지만 군과 경찰 특수부대 등에서는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지해하고 이동 시 소음이 발생할 수 있는 금속 수갑 대신 케이블 타이를 두 개를 맞댄 형태의 플라스틱 수갑을 개발해 활용하기 시작했다. 양 손목을 따로 결박하기 때문에 포박 대상의 행동을 확실하게 구속할 수 있다는 강점이 때문이다.

케이블 타이는 의료 현장에서도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제품이다. 가격이 저렴하고 무게는 가볍고 묶기가 쉽지만 풀리지도 않는 가성비에 더해 제조·출고 공정에서 멸균 처리가 가능한 일회용 도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용 관을 고정하는 용도의 케이블 타이는 물론 케이블 타이의 역진방지장치(래칫) 원리를 이용해 상처를 꿰매지 않고 봉합하는 의료 기구(의료용 봉합유지기구)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미국 월간지 폴리스 매거진에 따르면 케이블 타이의 이 같은 가성비가 부각되면서 1965년부터 미국 경찰이 플라스틱 수갑으로 처음으로 활용했다. 이는 복잡한 항공기 배선 정리를 위해 도입해 의료용 기구를 거쳐 군과 경찰이 제압해야 할 범죄자 등 주요 인물에 대한 신병 구속을 손쉽게 하기 위한 장치로 발전한 셈이다.

미국의 경우 자유로운 집회와 시위는 보장하되, 시위장소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하게 다스리고 있다. 의회 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지도층 인사들도 규정상 금지된 연좌시위를 벌이거나, 공공도로의 통행을 방해하면 예외 없이 경찰에 체포된다. 이 때 경찰을 시위장에서 곧바로 체포하고 플라스틱 수갑을 채운 채로 연행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4년부터 교정시설에서 인권침해 논란을 빚었던 쇠사슬과 가죽수갑을 완전히 폐지하는 대신 자동차 안전벨트 재질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벨트 수갑’과 ‘플라스틱 수갑’이 도입을 금속수갑의 단점을 보완했다.

안타깝게도 지난 12월 4일 새벽 비상계엄 당시 게엄군이 국회 본청에 진입했고 여기저기 휘젓고 다닌 계엄군 체포자가 주요 정치인을 체포(신병을 구속)하고자 소지하고 들어왔다 두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군용 케이블 타이가 바로 ‘플라스틱 수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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