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 같은 분야, 하지만 아직은 산업이 기술을 보수적으로 받아들이는 영역. 금융이다. 생성AI를 활용한 금융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지만,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전통적인 금융 사업자는 아직 변화에 적극 대응하진 못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전통 금융 기업에도 누군가 불쏘시개에 불만 제대로 지핀다면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오랜 업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게, 이들 금융 사업자는 스타트업엔 없는 수십 년간 축적된 고객 데이터와 고객 경험이 있다. 잘만 쓰면 엄청난 경쟁력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이들 전통 사업자에게 낡은 레거시 시스템에서 탈피해 새로운 기술로 금융 서비스의 과제를 해결하라고 말한다.
최근 개최한 AWS 클라우드 컨퍼런스 ‘리인벤트 2024’ 현장에서 존 케인 AWS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발 책임자를 만났다. 6년 간 AWS에서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발을 맡아왔는데, 쉽게 말해서 금융 회사가 AWS 클라우드를 도입하도록 기술 관련 지식을 전수하는 일을 하는 인물이다. 금융권에서 20년 다진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권이 신기술을 도입하도록 설득하고 사례를 발굴해내는 전도사 역할이다.
존 케인 책임자는 “여전히 금융 산업의 주요 데이터는 레거시 시스템에 갇혀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데이터 분석과 고객경험 개선을 위한 AI 도구들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올해의 큰 변화”라고 짚었다. 그에게 생성 AI로 대표되는 혁신 기술이 금융 서비스를 어떻게 바꿔나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AWS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지난해 리인벤트에서도 여러 인터뷰를 한 것을 봤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금융권에서 AI를 활용한 기술 트렌드의 변화가 있었나?
‘엔드 투 엔드 고객 경험 개선에 집중’이라는 큰 트렌드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이 산업의 주요 데이터는 레거시 시스템에 갇혀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데이터 분석과 고객경험 개선을 위한 AI 도구들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올해의 큰 변화다.
일단, 이번 리인벤트에서 발표한 생성 AI 관련 내용만 보더라도, AWS가 얼마나 풍부한 도구를 제공하는지 알 수 있다. 고객 사례 발표도 있었는데, 미국의 모기지 대출회사인 로켓모기지(Rocket Mortgage)가 한 예다. AI가 상담원들의 대화를 전사하고 요약, 고객에게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하게 한다. 첫 통화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비율을 높였고, 고객들이 왜 상담센터에 전화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아내기도 한다.
올해 AWS가 발표한 여러 AI 솔루션이 내년 금융 서비스 산업 지형에 영향을 줄 거라고 보나? 특히 결제 시스템과 투자 분야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궁금하다
리인벤트 무대에 선 미국의 헤지펀드 브릿지워터(Bridgewater)의 구축 사례 이야기를 해보자. 이 회사가 만든 투자 리서치 어시스턴트는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 시, GDP가 하락하면 외환 포지션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와 같은 복잡한 투자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
브릿지워터는 생성 AI 기술을 사용해 복잡한 질문을 더 작은 질문들로 나누고, 개별 작업에 맞춰진 소규모 AI 모델들을 활용해 투자 리서치 프로세스의 여러 부분을 실행하고 있다. 또, 이 결과를 종합해 연구자에게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올해 초와 비교하면 극적인 변화다. 올 초만 해도 브릿지워터의 시스템은 단순히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 AI에 데이터를 요청하는 수준에 그쳤었다. “이 아이디어에 대한 데이터를 가져와 줄 수 있어?“와 같은 단순 요청이었는데, 이제는 “이 아이디어를 테스트해보고 그 결과를 설명해줘“라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미쓰비시 UFJ은행(MUFG)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한다. 기업 고객과 더 나은 상호작용 방법을 모색 중이었는데, 생성 AI를 사용해 공공 금융 문서와 자체 정보를 결합했다. 이를 통해 고객의 재정 상태 변화를 이해하고,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금융 상품을 추천하는 식이다.
역시 예를 들어 보자. 고객의 재정 상황이 변하면 새로운 외환거래나 파생상품이 필요해질수 있다. MUFG의 시스템은 영업 담당자의 “내 고객의 최신 필요는 무엇인가?”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상품은 무엇인가?” “왜 그 상품이 필요한가?“등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MUFG는 새로운 영업 아이디어를 100배 더 빠르게 생성할 수 있었고, 고객에게 제안한 아이디어도 30%나 더 많이 수용되는 결과를 냈다.
이 두 사례는 생성 AI가 투자와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어떻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지를 보여준다.
전통 금융 서비스는 여전히 레거시 시스템에 묶여 있어 스타트업과 달리 빠른 혁신이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스타트업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기존 기술에 따른 레거시 부채가 없어서다. 클라우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테스트하고 성공 시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는 이상적 방식이다.
글로벌 금융 서비스 시장에서 이미 스타트업들의 성공 사례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투자플랫폼인 로빈후드(Robinhood)나 브라질의 디지털 은행 누뱅크(Nubank) 등은 빠르게 성장하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전통 금융 기관은 스타트업엔 없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고객 데이터와 그동안의 고객 경험이다.
전통 금융 기관이 스타트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보유한 고객 데이터를 지능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고객 경험을 개인화하고, 고객에게 더 맞춤화된 추천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전통 금융 기관들이 여전히 데이터를 사일로화(분리된 형태)해 보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금융 기관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사일로를 해체하고,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AWS는 데이터를 더 쉽게 접근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툴과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전통 금융 기관들이 이러한 툴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스타트업과 경쟁할 수 있는 핵심 전략이라고 본다.
주식, 결제, 은행, 보험 등 여러 금융 서비스 산업 중 가장 먼저 생성AI를 잘 채택할 수 있는 분야는 어디라고 보나?
생성형 AI가 특히 보험 산업에서 주목받고 있다. 보험은 고객과의 상호작용이 상대적으로 빈번하지 않은 산업이라서다. 보험이 결제나 은행, 자본 시장에 비해 현대화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그만큼 더 큰 기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험 정책 분석, 보장 범위 검토, 보장 결정, 청구 제출 시 사기 탐지와 같은 작업이 그렇다. 이러한 분야에서 기술을 활용할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산업의 변화를 주도할 기회가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보험 산업을 빠르게 혁신하는 분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실제로 보험에 생성AI 채택이 증가하고 있는 걸 눈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방금 대답에서처럼, 생성AI가 보험을 비롯한 금융 산업에 접목되고 있는데, 그 성공 사례를 공유해달라. 자산관리 성공 사례를 포함해서 말이다
생성AI를 논하기 전에, 투자 모델링 관점에서 인공지능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더 구체적인 예시가 있다. 미국의 투자 자문사 뱅가드(Vanguard) 그룹은 18개월 전 쯤, 인공지능을 활용해 개인 맞춤형 은퇴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는 방법에 대해 발표했다. 나 역시 뱅가드의 여러 펀드를 보유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서 2040년 은퇴용 펀드 같은 것 말이다. 이런 펀드는 은퇴일이 가까워질수록 보수적인 투자로 전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내 은퇴 상황은, 내 옆에 있는 다른 이들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뱅가드는 고객 데이터를 활용, AI로 1000개 이상의 포트폴리오 조합을 모델링한 뒤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인공지능이 특정 개인에 맞춘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며, AI의 힘을 보여주는 투자 사례이기도 하다. 생성AI는 여기에 더해서,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를 활용해 더 구조화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자동화 투자 시스템이나 브릿지워터의 투자 어시스턴트를 보면 AI가 포트폴리오 구축에 광범위한 아이디어를 활용하게 하는 힘을 부여학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AI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능가했다고 보나?
이 모든 것이 애널리스트를 대체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예컨대 브릿지워터는 투자의 핵심 아이디어는 여전히 인간의 창의적인 생각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단순히 데이터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고, 시장의 기본 투자 원칙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린다. 다만, 생성AI는 인간의 결정을 잘 뒷받침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게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짜’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인간 감독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그렇다. 생성 AI는 여전히 환각(hallucination)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 전반에서 생성 AI를 이중으로 검토하고 환각 발생률을 줄이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번 리인벤트에서도 AWS가 자동화된 추론(Auto Reasoning) 기술을 발표하지 않았나. 이 기술은 AI의 답변을 수학적으로 검증해 정확한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환각을 줄인다.
생성 AI가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능력을 능가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생성 AI 기술이 인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쓰일 것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