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는 세습주의를 비판하는 책입니다. 노력으로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근대적 사상이 담겼죠. 1605년에 쓰인 작품이지만 이런 혁신적 철학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허름한 갑옷을 걸치고, 긴 창을 손에 든 노년의 미치광이 기사 돈키호테와 작은 체구에 당나귀를 탄 투박한 시종 산초. 이 둘의 결합은 수많은 작품 속에서 변주되며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미지가 됐다.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됐으며, 오늘날까지도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그 책, 『돈키호테』다.
2004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한 박철(76)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은 “유명한 만큼 자주 오독되는 것이 돈키호테”라며 “미치광이 기사의 방랑기로 기억되는 책이지만 페미니즘, 공화주의와 같은 혁신적 사상이 담겼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스페인어 확산에 기여한 연구자에게 스페인 국왕이 수여하는 세르반테스 국제학자상, ‘Ñ(에녜)상을 받은 박 전 총장을 4일 서울 서소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떤 상인가.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학자 중 스페인어의 보급과 연구에 기여한 이에게 스페인 국왕이 주는 상이다. 스페인어 연구자들은 최고의 영예로 여긴다. 상의 이름인 ‘에녜’는 스페인어에만 있는 자음 ‘Ñ’의 이름이다.
가장 큰 연구 성과는.
돈키호테 완역과 16세기 한국 스페인 간의 첫 역사적 만남을 밝힌 것. 스페인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선교사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1551~1611)가 1593년 한국 땅을 밟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그가 예수회 소속 사제들에게 임진왜란의 참상을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 이를 박사 유학 시절 유럽 곳곳의 고문서 도서관을 돌며 찾았다.
평생 세르반테스를 연구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연구와 해석이 나온다. 17세기 스페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세르반테스는 소설 『모범소설』에서 나이 어린 소녀를 노인에게 시집 보내는 관행을 비판했다. 『돈키호테』의 마르셀라는 스페인 문학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불린다. 이런 현대성이 세르반테스를 계속 연구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스페인 사람들도 한국 문학을 좋아하나.
스페인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작품이 100권이 넘는다. 특히 한강 작가가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채식주의자』 같은 책이 스페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외국어 문학 교육은 축소되는 추세다.
최근 지방 대학에서 스페인어과가 사라지고 있다. 문과 대학에서 영문학 빼고는 설 자리가 없다. 불어·독일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가서는 문학의 다양성, 사상의 다양성이 모두 위협을 받는다. K-컬처의 기반이 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