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중섭 그림 타일에 베낀 위작”…LA 미술관 “도록 발행 취소”

2024-06-30

“전시 도록 발행을 취소하겠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마이클 고반 관장의 말이다. 지난 26일 이 미술관에서 마련한 ‘한국의 보물들’ 전시 관련 간담회를 마치고서다. 전시 개막 후 해외 전문가들을 초빙해 특별 감정을 여는 건 미국 미술관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LACMA 관계자는 설명했다.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중섭·박수근 그림 4점 외에도 조선시대 회화·도자 등 여러 점에 대해 위작 의혹을 제기했다. 간담회는 당초 예정됐던 8시간을 넘겨 10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전시에 출품된 박수근ㆍ이중섭 등의 작품이 위작으로 의심된다는 본지 보도〈중앙일보 2월 29일자 18면〉 후 박수근연구소와 한국화랑협회, 그리고 LA 한국문화원에서 질의서를 보냈다. 미술관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국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여비 포함 1500만원 넘는 예산은 미술관이 부담했다.

전시장에서 전문가 불러 국제 회의…초유의 일

미술관은 휴관일인 26일 해당 전시장에서 전문가들과 회의를 열었다. 전시를 준비한 LACMA의 스티픈 리틀 아시아미술부장(중국미술사)으로 시작,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 수석연구원,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 등 초대된 한국의 전문가 4인이 각자의 작품 분석 결과를 공유하며 종일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 갔다.

이 자리에서 이중섭 카탈로그 레조네(전작도록)에 수록된 ‘장대놀이 하는 아이들‘ 이미지가 '원본'으로 제시됐다. LACMA 전시에 나온 '기어오르는 아이들'은 이 그림을 같은 크기의 타일에 그린 위작, 이 과정에서 세로 그림이 서명이 빠진 가로 그림으로 바뀌었다.

홍선표 교수는 박수근의 인물화에 대해 “정지한 인물 여럿을 공간감 없이 찍듯이 나열한 점, 인물에 붙어 있다시피 서명을 한 것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고, 이중섭의 ‘소와 아이’에 대해서도 “커다란 눈망울의 소 그림들과 달리 이 그림은 소의 눈이 가로로 길고, ‘중섭’ 서명의 ‘ㅅ’은 획이 잘려 있다”고 지적했다.

LACMA 리틀 부장이 “박수근 그림의 캔버스 뒷면에 1963년 이전 뉴욕ㆍLA의 미술재료상 스티커가 붙어 있다”고 하자 홍 교수는 “이 시기 캔버스라고 박수근 그림이 되는 건 아니다. 작가 고유의 양식과 기법에 비하면 재료의 시기는 부차적 요소"라고 반박했다.

박수근ㆍ이중섭만 문제 아냐…A급 작품 하나 없는 ‘한국의 보물들’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이인문(1745~1831)의 ‘이백관폭도(李白觀瀑圖)’로 나온 그림에 대해 “산수와 인물 표현이 이인문의 것과 다르다. 작가 미상의 19세기 그림으로 보인다”며 “특히 그림 맨 위에 ‘충익부인’이 찍혀 있는데 충익부(忠翊府)는 1699년 통폐합된 관청이다. 이인문은 이보다 훨씬 뒤에 태어났기에 이 도장 자체가 위작의 증거가 됐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도자 전문가 5명과 분석한 바 12세기 청자 정병(淨甁)은 “형태만 비슷할 뿐 유약색이나 빙열(도자기 표면의 실금)이 20세기 중반 이후의 모조품”이라며, 전시된 백자 대부분을 20세기 중반 이후의 것으로 판단했다. 이 관장은 “미술품에 A~D 등급이 있다면, ‘한국의 보물들’이라는 제목의 전시에는 적어도 AㆍB급 수준의 작품이 반 이상은 포함되어야 할 텐데, A급 작품은 한 점도 없고, 대부분이 CㆍD급”이라고도 지적했다.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이 전시 준비 과정에서 한국미술 전문가들을 통해 검토하지 않았는지 묻자 리틀 부장이 “한국의 공립미술관장 A 씨에게 보여줬고, ‘좋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A 관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리틀 부장이 지인을 통해 '미술관을 보고 싶다'고 해 지난해 말 처음 만났고, 이 자리에서 본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근대 회화 이미지들을 보여줘서 '더 연구해 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LACMA 마이클 고반 관장은 ”기증자에 대한 예우로 시작된 전시였다. 계획된 작품집 발행은 취소해야겠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미 서부 최대의 공립미술관인 LACMA는 지난 2021년 한국계 미국인 체스터 장과 그의 아들 캐머런 장으로부터 회화ㆍ도자ㆍ수석 등 100점을 기증받았고, 이 중 35점을 골라 지난 2월 ‘한국의 보물들: 체스터&캐머런 장 컬렉션’ 전을 열었다. 전시는 30일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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