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생중계 업무보고…대통령 일방통행 돼선 곤란

2025-12-17

대통령과 기관장 간에 민망한 업무 범위 공방

국정 큰 방향 제시하되 공무원 전문성 존중을

정부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사상 처음으로 생중계로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진통과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말과 현장 분위기가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되는 장점은 있지만, 즉흥적이거나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오해나 혼란을 초래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더라”고 농담했지만, 아슬아슬한 장면을 속출하며 국민에게 피로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어제는 이 대통령과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 사이에 난데없는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이 대통령은 “기사 댓글에 보니 관세청과 공항공사가 MOU(업무협약)를 맺었기 때문에 (외화 밀반출 단속은) 공항공사가 담당하는 게 맞는다고 나와 있더라”며 “천하의 도둑놈 심보”라고 이 사장을 비난했다. 그러자 이 사장은 곧장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외화 불법 반출 단속의 법적 책임은 관세청에 있고 인천공항은 MOU로 협조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이 업무 범위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는 것부터가 황당하고 민망한 일이다.

그제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선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검토 지시가 논란이 됐다. 이 대통령은 “요즘은 탈모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건보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건보 기금은 내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2033년 완전히 고갈될 전망이다. 조금이라도 건보 적자를 줄이려면 감기 같은 경증 질환에 혜택을 축소하는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에 없던 항목을 건보에 추가하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의료비 혜택을 주는 방안을 고민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도 현장의 의료 전문가들은 난색을 보인다. 더는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가 존엄한 방법으로 마지막을 선택하도록 돕는 것은 좋지만, 돈 때문에 치료를 그만둔다면 윤리적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대통령이 각 부처의 신년 업무보고를 받으며 국정 운영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건 필요한 일이고, 역대 정권에서도 그렇게 해 왔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세한 부분까지 대통령이 관여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 대통령이 장관이나 기관장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방통행식으로 지시한다면 지지자들이 보기엔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전문가의 의견을 폭넓게 듣는 것도 중요하다.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각별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업무보고 생중계가 공직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는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불필요한 잡음을 키우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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