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 중심으로 사모펀드가 피인수기업 자산을 담보로 인수 자금을 조달하는 ‘차입인수(LBOㆍ레버리지드 바이아웃)’ 관한 규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 원인으로 무리한 LBO가 지목되면서다.
7일 차규근 의원실(조국혁신당)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2015년부터 빚내지 않고 펀드 자금으로 인수합병(MA&)에 성공한 건 10건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간 22곳 국내 대형 PEF 운용사가 기업 인수계약(지분 포함)을 체결한 142건 가운데 7%에 불과하다. 대부분 금융사에 빚을 내 기업 인수에 나섰다는 의미다. 사모펀드 순자산의 50% 이상을 빌려 인수한 사례는 39건에 이른다. 펀드 자금의 100% 이상을 차입해서 기업을 인수한 경우도 11건으로 나타났다.

국내 사모펀드가 LBO에 적극적인 건 규제가 덜해서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금전 차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에 대해선 순자산 대비 차입 한도를 400%(4배)까지 열어뒀다. 부실기업을 인수해 자본을 공급하고, 신사업을 육성하는 ‘토종 모험자본(사모펀드)’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국내 토종 사모펀드 규모는 제도가 도입된 2004년 말 4000억원에서 2023년 말 136조4000억원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사모펀드가 소규모 자본으로 덩치가 큰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차입 인수에 있었다. 아직 인수하지 않은 회사 자산을 담보로 금융사에 빚을 내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LBO의 단점이 더 부각된다. 업황이 악화하자 빚 상환을 떠안은 피인수기업의 재무상태가 빠르게 악화한 사례가 늘면서다
올해 3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선 홈플러스가 대표적이다. 2015년 MBK파트너스가 역사상 최고가인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품었을 때도 LBO를 활용했다. 펀드 순자산(2조5000억원)의 160%인 4조원(승계 대출금 포함)을 부동산 담보로 금융권에서 빌렸다. 쿠팡 등 이커머스 공세에 영업환경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지 못한 ‘통 큰 베팅’이었다. 이후 MBK가 대규모 차입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알짜 매장을 줄줄이 팔면서 마트 경쟁력은 떨어졌다.
MBK는 지난해 6월 조선혜지와이홀딩스(이하 조선혜지와이) 지분(71.6%)을 2조원에 인수했다. 조선혜지와이는 국내 1위 의약품 유통사인 지오영의 최대주주다. MBK는 이번 인수전에도 7000억원을 차입했다. 한 달 뒤엔 2746억원 규모의 유상감자로 투자금 일부를 회수했다. 자본의 일부를 주주들에게 현금으로 돌려주는 게 유상감자다. 반면 빚이 불어난 조선혜지와이 부채비율은 2023년 말 506%에서 지난해 말 1600%로 치솟았다.
한샘도 사모펀드에 인수된 후 맥을 못 춘다. IMM프라이빗에쿼티(PE)는 2021년 금융사 차입 등을 활용해 한샘을 약 1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한샘의 시가총액은 지난 2일 기준 9884억원으로 4년 전보다 반 토막 났다.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배당을 늘리고, 알짜 부지를 매각해 대주주(IMM PE) 손실 보전으로 활용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권 중심으로 이번 홈플러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자본시장법상 LBO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차입 한도를 현행 순자산 대비 400%에서 200%로 낮추거나 일정 기간 피인수기업의 자산 유출을 제한하는 방식 등을 논의 중이다.
전면적인 규제 강화 움직임에 PEF 업계에선 우려가 크다. 임유철 PEF운용사협의회 회장은 “차입 한도를 과도하게 낮추면 2조~3조원 이상 대형 매물이 나올 때마다 자금력이 풍부한 외국계 사모펀드에 뺏길 수밖에 없다”며 “자칫 국내 토종펀드가 역차별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미국과 영국, 일본 등 주요국 사모펀드 시장에선 한국처럼 법적으로 차입 한도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만 규제를 강화되면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은 금융당국으로 넘어갔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연구원에 사모펀드 규제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해외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당국은 사모펀드 출자자(LP)인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적극 사모펀드를 감시ㆍ견제하는 방향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최근 국민연금이 MBK 펀드에 출자하면서 계약서엔 ‘적대적 M&A 투자 건엔 참여하지 않겠다’고 조항을 추가한 점도 사모펀드를 감시하는 방법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사모펀드 생태계가 흔들리지 않게 규제보다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기업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자금줄을 쥔 기관투자가의 견제 등 공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규근 의원도 “LBO를 제한하는 단편적인 해법보다 장기적으로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살리면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