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민권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마을
이스라엘 정착민 공격으로 2명 사망·58명 부상
정착민 폭력, 3%만 유죄 판결 ‘무처벌’ 정책
가자전쟁 발발 이후 서안지구 정착민 폭력으로
팔레스타인인 1000명 가까이 사망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를 확대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 정착민과 보안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살해 및 공격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시민권을 지닌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는 부유한 팔레스타인 마을조차 정착민의 폭력으로 주민이 숨지는 등 공격 대상과 수위가 확대되고 있다. 유엔은 서안지구 정착민 폭력이 최근 20년 사이 최고 수준에 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서안지구 알마즈라 알샤르키야에서 사이풀라 카멜 무살렛(20)과 모하마드 알샬라비(23)가 정착민의 폭력에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플로리다 태생 미국 시민이었던 무살렛은 정착민들의 무차별 폭행으로 숨졌으며, 알샬라비는 총에 맞아 숨졌다.
알마즈라 알샤르키야 마을 주민들은 최근 몇 달 동안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위협에 시달렸다. 정착민은 총을 들고 마을 인근에 나타났고, 이스라엘 보안군은 마을을 바리케이드와 울타리로 둘러싸며 ‘야외 감옥’으로 만들려 했다. 이에 저항하는 마을 주민들 이날 알샤르키아와 이웃 마을 신질 사이 들판에 모여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곧 정착민들이 몽둥이를 들고나와 주민들을 폭행하고 총격을 가했다. 그 결과 2명이 참혹한 죽음을 맞고 58명이 부상당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두고 “미국 여권 소지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부유한 마을조차 정착민의 폭력 앞에서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과거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대부분 팔레스타인 신분증을 유지한 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들은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미국식 대저택을 짓고 여름철에 들르거나 몇 년씩 머물러왔다. “아이들에게 뿌리를 알려주기 위해” “우리 가족이 수백년간 소유해온 땅을 지키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인사로 유명한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는 무살렛의 피살에 대해 “범죄이자 테러 행위”라며 “이스라엘 정부가 철저시 수사해야 한다” 촉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시민단체 피스나우의 정착촌 감시국장 요나탄 미즈라히는 미국 정부가 정착민 폭력 사태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에 실질적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며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에 사실상 무처벌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인권 단체 예시딘은 2005~2024년까지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한 1700건 이상의 경찰 수사를 조사한 결과, 93% 이상의 사건이 기소 없이 종결됐고 기소된 사건의 3%만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서안지구에서도 정착민의 팔레스타인인 공격이 급증하는 가운데 미국 시민권자들이 숨지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기자 시린 아부아클레, 팔레스타인 미국인 청소년 오마르 모하마드 라비아, 터키계 미국인 인권운동가 아이셰누르 에즈기 에이기 등이 숨졌다.
유엔은 지난 1월 이스라엘 서안지구 북부에서 군사 작전 ‘철의 장벽’을 시작한 뒤 약 3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강제 이주당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이후 이스라엘 보안군은 1400여채의 주택에 대한 철거 명령을 내렸다.

2023년 전쟁 발발 이후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과 정착민에 의해 살해된 팔레스타인인이 최소 964명에 달한다. 유엔은 지난 6월 정착민 폭력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부상자 수가 100명으로,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유엔은 또한 지난 6월 이후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서안지구 마을의 물 샘과 수자원 인프라를 표적으로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유엔은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강제 이주시키는 것은 제네바 제4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며, 반인륜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팔레스타인 영토 전역에서 자행되는 살인, 괴롭힘, 가옥 파괴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가자지구에서는 20일 구호품을 기다리던 주민 93명이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숨졌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가자지구 민방위대는 이날 가자지구 북부에 도착한 유엔 구호트럭 행렬에 몰려든 군중 가운데 80명이 사망했으며, 남부 라파 구호소에서 9명이, 남부 칸유니스 구호소에서 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은 “이스라엘에서 넘어온 식량 트럭 25대가 가자에 진입하자 굶주린 대규모 군중에 둘러싸였고 총격이 이뤄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