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수 시인과 함께 읽는 책 놀이터 30 - 마음수선/최은영/창비

2024-10-16

나만 아픈 것 같고,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순간을 겪게 되고 나만 홀로 망가져 버린 느낌이 들 때면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거나 멍을 때리며 있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이유 없이 떠나버린 아빠를 그리워하며 마음의 문을 닫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 자락을 둘러메고 있는 아빠와의 추억과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울다가 웃다가, 마음을 조여 보았다. “때가 되면 흩어진 별들이 반짝이고 우리는 망가진 마음을 수선할 것이다.”라는 구절처럼 책 속에 빠져들어본다.

최은영의 <마음수선> 그림책에는 우리의 아픈 마음처럼 다양한 사물들이 고장이 나 있는 풍경이 들어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걱정이나 고민이 큰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근심 어린 마음을 표출하고 단단하게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가는 일을 일상에서 많이 만나게된다.

“전등이 고장 났어,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걸

연필이 이상해, 아무것도 쓸 수가 없어,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

우산이 망가졌어, 내 우산만 행복하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고장 난 사물이 등장하는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매력적인 그림책. 시계, 전등, 침대, 텔레비전, 우산 등 일상의 물건이 망가져서 벌어지는 일을 기묘하게 말한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독특한 연출과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흐름으로 각자에게 진솔하고 다양한 물음을 조명하고 있다. 우울, 트라우마, 불안 등 마음의 문제, 망가진 마음을 누군가 다정하게 위로해주며 마음결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다독여준다. 독창적인 상상과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는 순간을 해방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퇴근길에 가져간 울지 않는 조용한 뻐꾸기시계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잠들지 못할 만큼 삐걱거리는 침대, 버튼을 눌러도 화면이 바뀌지 않는 텔레비전, 욕실을 물바다로 만드는 수도꼭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연필 등. 사물이 일으키는 기묘한 수수께끼 같은 구체적인 상황이 펼쳐있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행복한 느낌에 대한 질문을 품고 슬픔이 만든 수영장, 푹신한 인형이 마련한 편한 침대가 드넓은 환상이 되어 해방감을 준다.

<마음수선>은 마음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부드러운 자리를 내어준다. 전반부에 펼쳐지는 불안, 우울, 슬픔, 무기력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후반부에는 희망과 연대를 상징하는 노랑으로 힘차게 반짝인다. 어떤 걱정은 생각보다 큰일이 아닐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조금씩 해결해 나갈 수 있음을 말한다. “괜찮습니다”라는 남은 안내문은 묵직한 울림을 주고 우리들의 내면의 힘은 단단하고 크다는 것을,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상황에 공감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에 타인과 공감하며 우리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수선할 수 있음을 말한다.

아빠와의 즐거웠던 경험과 아빠의 부재로 쌓여가는 슬픔과 불편함을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며 문장 수첩에 글을 썼다. “우리는 망가진 마음을 수선해”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덮었던 책장을 여러 번 훑어보았다. 현실 속의 망가지고 고장 난 물건들과 마음속 보이지 않는 다친곳을 돌아보는 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다독이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 각자에게 내재한 힘과 소통의 가치를 꼼꼼히 들여다보기 좋은 그림책. 오늘도 구멍 난 마음을 수선하면서 하루를 곱씹어본다.

김헌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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