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인물 탐구 〈23〉 김필순

김필순(金弼淳) 선생은 1878년 황해도 장연 소래마을의 풍족한 가정에서 아버지 김성섬의 5남4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연은 서해에 접해 일찍부터 중국과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 삼국시대에는 불교가 들어온 통로였고 근세에는 선교사 활동으로 기독교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다. 1885년 제물포항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도착했고 이듬해 언더우드는 장연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소래에는 한국 최초의 교회와 소래학교가 세워졌고 선생 집안은 일찍 개화해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았다. 언더우드는 선생과 김규식·서병호 등 독립운동가를 키워낸 인물이다.
서양 문물 일찍 받아들인 황해도 태생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다 1894년 언더우드 목사를 따라 서울로 가서 그의 집에 머물며 이듬해 배재학당에 입학했다. 당시 배재학당에는 이승만·주시경·남궁혁 등이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었고, 선생은 독립협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들과 만나게 된다. 4년간 학업을 마친 후 1899년 고종이 설립한 최초의 서양병원 제중원에 발탁되어 통역 및 조수로 일하다가 선교사이자 의사인 에비슨을 만나게 된다.
그해 제중원은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에 운영권이 넘어갔고 에비슨은 1904년 미국 클리블랜드의 부호 L H 세브란스로부터 거액을 기부받아 경성역 건너편에 병원을 신축해 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세브란스학교도 설립했다. 선생은 의학교 1회로 입학해 수학하면서 해부학 교과서를 번역하고 저학년 강의를 맡는 등 가장 우수한 의학생으로 평가받았다.
선생은 의학생 시절 망국의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1907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군을 강제 해산시키자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 참령이 충군애국의 길을 택해 권총으로 자결했고 이 소식을 들은 대한제국 군인들이 무장투쟁에 나서 남대문 일대에서 일본 군대와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으니 바로 ‘남대문전투’다. 이 전투에서 대한제국 군인 70여 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심한 부상을 당하면서 그 일대가 피로 물들여졌다. 세브란스병원이 이곳에 있었기에 선생을 비롯한 의사와 의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부상 환자 치료에 나섰다. 이 사건은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1908년 다른 6명과 함께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해 최초의 의사 면허를 받은 선생은 의학교 교수가 되어 에비슨을 이어받을 재목으로 인정받고 가족과 함께 병원 안 관사에 살면서 후학을 가르치는 한편 본격적인 의료 활동에 나섰다. 선생은 동갑내기인 안창호와 의형제를 맺고 그의 국내외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1908년 안창호·이동휘·양기탁·이동녕 등이 설립한 비밀결사 신민회에 참여해 항일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병원 바로 인근에 형 윤오와 함께 ‘김형제상회’를 설립해 운영했는데 이곳은 신민회의 비밀 모임 장소가 되었고 선생은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애국운동에 나서게 된다. 선생은 안창호와 함께 항일운동의 방향을 숙의했고 신민회 해외 기지 개척에도 뜻을 모으게 된다.
1909년 안중근 의사 의거가 일어나자 일제는 신민회 인사들을 체포했고 안창호는 관련 혐의로 수개월간 감옥살이를 한 끝에 석방되었다. 이때 선생은 안창호를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시키고 후배이자 동지인 이태준을 소개해 치료를 맡게 한다. 이태준은 후일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독립운동에 나서게 된다. 선생은 의학교 학감과 외래 책임자로 병원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으나 그에게는 또 다른 인생 행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1911년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사건을 조작해 민족운동가 600여 명을 체포해 무자비한 고문 끝에 123명을 기소하고 105명을 유죄로 판결해 투옥한 ‘105인 사건’을 일으켜 신민회를 해체시킨다. 신민회 회원이자 김형제상회와 세브란스병원에 관계된 인물로 감시를 받던 선생은 검거 선풍을 피해 이듬해 국외 망명을 떠나게 된다. 선생은 중국의 신해혁명을 보면서 당초 상하이나 남경으로 가려고 계획했으나 독립운동 기지 개척을 추진하기 위해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고 신민회 동지들이 활동 중인 서간도 지역 퉁화에 자리잡았고 가족들도 데려왔다. 퉁화현은 먼저 망명한 이회영 일가와 김동삼·이상룡 등이 활동하고 있는 유하현과는 합니하로 연결되는 곳으로 독립활동의 무대가 된 곳이다. 선생은 동포 치료와 독립운동가 지원을 위해 ‘적십자병원’을 열었고 조선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면서 감시가 심해지자 1916년 선생은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려는 안창호와 뜻을 같이하고 내륙 깊숙한 곳인 북만주 흑룡강성 치치하얼로 근거지를 옮긴다. 치치하얼은 고조선-부여-고구려-거란-금 등으로 이어지며 한민족 고대 국가가 자리 잡았던 땅으로 동포 사회가 형성되고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와 활동 영역이 된 곳이다. 선생이 퉁화를 떠난 얼마 후 일제는 그 지역 독립군들을 대거 체포했다. 선생은 치치하얼에서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북제진료소’라는 병원을 열었는데 북쪽에 있는 제중원이란 뜻이다. 선생은 러시아 군인들을 위한 군의관을 겸하면서 의료 활동에 나섰다. 진료소는 경성의 김형제상회처럼 독립군들의 치료와 회합 장소가 되었고 병원 수익금은 모두 독립운동에 쓰였다. 선생은 치치하얼에서 130여 리(수십만 평)의 땅을 사서 일가와 동포들이 힘을 합해 독립운동 후방 기지인 농장을 개간하도록 했고 ‘생계회’라는 동포 조합도 결성했다. 그러자 일제는 조선인 독립운동 조직이라 지목해 감시를 시작했고 첩자를 투입하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과 임정수립 등 독립을 위한 뜨거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던 그해 9월 선생은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다. 일본인 수련의가 찾아와 의술을 배우기 희망하자 선의로 받아들였는데 이 수련의가 전해 준 우유를 마신 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41세를 일기로 운명하고 말았다. 이 일본인 수련의는 일제의 특무요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안창호는 임정 내무총장으로 서간도와 북간도의 무장 독립군 세력을 규합해 대한광복군 총영 설치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기에 뜻을 함께했던 선생의 순국이 더욱 안타깝다.
형제·자녀 등 전 가족이 독립운동가로
선생은 최초의 면허 의사로 한국 근대 의학의 기반을 닦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신의 영달을 미련 없이 버리고 대의를 선택해 헌신했다. 선생은 병원을 운영해 번 돈을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일곱 아들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으나 선생은 뜻을 계속 이어 나갔다. 첫째 아들 덕봉(영)은 산둥의과대학 졸업 후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련하고 간도 용정 제창병원에서 근무했다. 셋째 덕린(염)은 1930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영화 ‘야초한화’의 주연을 맡아 유명 스타가 되었고 이어 ‘들장미’ 주연으로 중국 영화계 최고의 배우가 되어 ‘영화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중국을 점령한 일제의 영화 출연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고 배우로 번 돈을 상하이 임정의 김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후에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고 문화대혁명 기간 중 투옥되어 8년간 옥고 끝에 석방된 후 1983년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선생 집안은 거의 전 가족이 독립운동에 나섰다. 첫째 여동생 김구례의 남편은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임정에서 활동한 서병호이며, 셋째 여동생 김순애는 애국부인회를 출범시켰으며 남편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해 대한독립의지를 알렸고, 넷째 여동생 김필례는 신간회 자매단체인 근우회 조직과 YWCA 설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조카 김마리아는 일본에서 2·8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어와 3·1운동의 불씨가 되게 한 애국지사다. 선생의 의학교 동기들도 여러 명이 독립운동 중에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늦게 선생에게 건국훈장애족장을 수여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2007~2008년 재정경제부 제1차관을 거쳐, 2011~2013년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현재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가 있으며, 오랜 경제전문가로서 직장인들의 팍팍한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가성비 좋은 서울의 노포 맛집을 소개한 『한 끼 식사의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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