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범죄수익 몰수한 檢…매각기준 없어 '시장 충격' 우려

202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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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을 활용한 범죄가 급증하며 검찰이 범죄 수익으로 몰수·압수한 가상자산 규모가 수천억 원대에 이르지만 명확한 매각 기준이 없어 국고 환수 과정에서 시장의 충격이 우려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가상자산 시장 변동폭이 커지는 가운데 국고 환수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일괄 처분보다 점진적 매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와 가상자산 업계는 분할 매각을 위한 제도 마련 등 ‘몰수 가상자산’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지난 2018년 1월부터 2024년 9월까지 몰수한 가상자산은 비트코인·모네로·이더리움·리플·클레이튼 등 20종으로, 시가 기준 약 320억 원 규모다.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향후 몰수 가능성이 있는 자산까지 포함하면 총액은 수천억 원대로 추정된다. 당장 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만 해도 2023년 7월 출범한 이후 올해 2월까지 압수·몰수·추징보전한 가상자산 범죄수익이 1561억 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재판이 완료되면 형사소송법·국세징수법·검찰압수물사무규칙에 따라 일부 가상자산을 매각해 국고에 귀속시켰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몰수 판결 확정 후 즉시 매각하는 현행 방식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에는 법인 계좌 개설이 불가능해 검찰청 직원 개인 계좌로 즉시 매각했고 대량 처분 사례도 없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금융 당국이 검찰청 명의의 법인 계좌 개설을 허용하면서 매각 절차의 투명성이 높아졌고 단기간 내 매각할 필요성도 줄어든 만큼 별도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최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연구 용역으로 수행한 ‘가상자산 압수·수색 및 표준관리모델 설계’ 연구에서 가상자산의 매각 시점과 방식에 대한 법적 규정이 미비해 실효적 처분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한꺼번에 처분하기보다 일정 기간에 걸쳐 분할 매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를 통해 가격 급락을 방지하고 국고 환수액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TWAP(시간 가중 평균 가격)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일정 시간 동안 자산을 나눠 매각하는 방식으로, 대량 처분으로 인한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현재 검찰은 담당 검사나 수사관이 직접 거래소에서 매각을 진행하지만, 이 방식은 매각 시점에 따라 국고 환수액이 달라지고 시장 개입 논란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특히 유동성이 낮은 자산은 가격 변동성이 커질 위험이 있어 TWAP을 활용하면 보다 안정적인 가격으로 매각하고 슬리피지(대량 거래로 인한 가격 변동·손실) 현상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매각이 불가능한 가상자산도 문제다. 모네로·라이트코인 등 익명성이 강화된 다크코인은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가 금지돼 현금화할 수 없다. 보고서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을 통해 해외 거래소에서 매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몰수한 가상자산을 단순 매각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보유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달 초 범죄수익 등으로 압수한 가상자산을 즉시 매각하지 않고 일정량 보유하며 시장 영향을 조절하는 ‘가상자산 전략 비축’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이 급락할 위험이 있지만 반대로 가격이 오를 경우 국고 환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무조건적인 매각보다는 장기적인 처분 계획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법 집행기관의 가상자산 몰수·매각 절차에 대한 별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주식은 한국예탁결제원 등을 통한 공매(블록딜), 부동산은 한국자산관리공사 경매 등 환가(換價) 절차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가상자산은 이런 기준이 없다”며 “시장 충격을 줄이고 안정적인 국고 환수를 위해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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