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장비가 기가 막혀...장비 소고기(張飛牛肉) 탄생 스토리

2025-09-17

장비우육(張飛牛肉)은 사천성 낭중(閬中)이라는 곳의 특산 소고기다. 육포도 아니고 베이컨도 아닌 것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사천 특유의 얼얼하고 매운맛이 특징이다. 그 자체로도 먹지만 주로 소고기 요리 혹은 소고기 국수인 우육면의 토핑 재료 등으로도 쓰인다.

최근 중국에서는 장비우육도 홍콩이나 마카오의 소고기 육포가 그랬던 것처럼 사천성 특산품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마파두부나 마라탕처럼 중국 전역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뜬금없게 웬 장비 소고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낯선 중국 음식이다. 그럼에도 장비우육이라는 이 음식, 중국 풍물과 음식을 소개하는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나름 이유는 있다. 사천성 낭중이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의 사당이 있고 장비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곳이라 관련 유적을 상당수 꾸며놓아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 지역이다. 같은 맥락에서 장비우육도 눈길을 끄는데 이 음식의 원형이 장비가 요리했던 소고기라는 것이다.

관련해서 크게 두 갈래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장비 그리고 낭중과의 관계다. 삼국시대에 제갈량의 지휘를 받은 장비가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 강주(江州)를 점령했다. 지금의 중경이다. 이후 유비는 장비를 강주 인근, 현재의 낭중인 파서(巴西) 태수로 임명한다. 태수가 된 장비는 장합이 이끄는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고 낭중을 굳건히 지켜냈다.

이곳을 지킬 때 소설 삼국지, 즉 『삼국지통속연의』에서는 술 취한 장비가 부하를 두들겨 팼고 그 부하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전해지는 민간 속설에서는 장비가 그렇게 난폭하지 않았다. 조조의 군대로부터 낭중을 지켜 백성을 보호했고, 전투에서 승리하자 고생한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소를 잡아 직접 요리해 부하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러기에 후대 사람들이 이곳에 장비의 사당인 한장환후사(漢張桓侯祠)를 지어 그를 기렸다. 심지어 장비를 도시의 수호신으로까지 모셨다. 그리고 장비가 요리한 소고기를 기념해 장비우육(張飛牛肉)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도 엉성하기 그지없는 유래설이지만, 그럼에도 궁금한 것은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소고기는 오히려 멀리하는 중국에서 장비가 왜 하필 돼지 대신 소를 잡아 장병들을 위로했느냐는 것이다.

먼저 지리적 문화적 배경이다. 낭중은 사천성 동북부 지역으로, 실크로드와 연결되는 감숙성과 멀지 않다. 이곳에는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회족과 소수민족이 많이 산다. 그래서 예로부터 소고기 요리가 많았다. 지금도 사천성에서 소고기 탕면인 우육면을 비롯해 마라훠궈에 들어가는 소고기 요리가 발달한 이유다. 소고기가 장비와 연결된 배경이다.

또 다른 유래설도 있다. 장비우육은 장비가 유비, 관우와 의형제를 맺은 도원결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장비가 그 소를 요리해 나누어 먹은 것이 원형이라고 한다. 용맹하면서 난폭한 장비가 왜 요리를 했을까 싶지만, 장비는 원래 하북성 탁군(涿郡)의 백정 출신이다. 단순히 도축만 한 것이 아니라 요리 솜씨도 출중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소설 삼국지를 보면 소와 흰말을 제물로 제례를 올리고, 제사가 끝난 후에는 소를 잡아 술자리를 만들었다(復宰牛設酒)는 내용이 보인다. 소와 흰 말로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황제의 제례 의식이니 유비가 황제의 후손임을 상징한다. 소를 잡았으니 그 고기로 음복을 하는 것은 당연했고, 이때 장비가 요리 솜씨를 발휘해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장비우육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재미있자고 만든 이야기에 정색하고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민망하지만 그래도 알아볼 필요는 있다. 진짜 장비우육은 어떻게 생겨난 음식일까? 거듭 말하자면 장비우육은 낭중시 보녕진(保寧鎭)의 특산물로, 소고기를 사천 특유의 양념에 절인 후 부패 방지를 위해 연기로 훈제해 만든 일종의 육포다.

지역에서 이 육포가 맛있다고 소문은 났지만 1980년대 중반 변곡점을 맞는다. 이곳 소·양고기(牛羊) 육가공공장의 공장장이 연기로 훈연해 겉은 시커멓고 속은 붉은빛이 도는 소고기 가공육의 모습이 마치 삼국지에 묘사된 장비의 형상과 비슷하다며 ‘장비우육’이라고 이름 지어 광고를 시작했다. 때맞춰 개혁개방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소비가 늘면서 절묘한 네이밍 덕분인지 장비우육도 중국에서 낭중시의 장비 마을과 함께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의 방송·유튜브 등에도 진짜처럼 소개된다.

삼국지의 장비가 만들었다는 소고기, 재미로 들으면 그뿐이지만 자칫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곤란하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중국 돼지고기찜 동파육(東坡肉)이 진짜 소동파가 백성을 위해 요리한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 마치 제갈공명이 실제 만두를 발명했다고 믿는 것처럼, 거짓이 참으로 둔갑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스토리, 음식 이야기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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