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미주 "고교시절 전생체험서 접한 '설인',이젠 소울메이트 됐죠"

2025-03-27

홍익대 출신의 작가, 서정아트 서울서 개인전

'탐구생활:숨겨진 실타래'라는 타이틀로 일상 탐구

최면 통해 만난 '몬스터같은 설인'이 작업 화두로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현대미술 작가가 된 이미주(Miju Lee·42)가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의 서정아트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막했다. 이미주는 서정아트에서 갖는 첫 개인전에 내밀한 개인 서사가 담긴 회화 연작과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입체 작품 등 20여 점의 신작을 공개했다.

오는 4월 30일까지 열리는 이미주 작품전의 타이틀은 '탐구생활:숨겨진 실타래'이다. 전시에는 작가의 일상과 공상을 자유롭게 풀어낸 회화와 조각들이 다양하게 나왔다. 출품작들은 작가 자신의 현실과 상상, 내면과 외면, 물 위와 물 속이 공존하면서도 위트가 한스푼씩 가미돼 감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엉뚱한 도상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어디서 본 듯 낯설지 않고, 작가의 정서가 담겨 있어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미주는 익숙한 일상을 끝없이 돌아보며 그 삶 속에 숨겨진 단서와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그림과 조각으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그같은 탐구와 모색을 거친 것들이다. 이을 통해 작가가 일상을 해석하는 방식과 그것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들을 곱씹고 축적해 이를 그림일기 쓰듯 화폭에 옮긴다. 어느 여름밤 바닷가를 걸었던 순간, 강아지를 쓰다듬던 촉각 등 지극히 사소한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며 작가의 감각과 기억을 형성한다. 이는 종국적으로는 삶을 지탱하는 조용한 힘이 되는데 작가는 이를 '소프트 파워'라 부른다. 거대한 사건이나 강렬한 감정 보다는 일상의 틈을 채우는 이런 사소한 정서들이 축적돼 삶을 형성한다고 작가는 믿는다.

전시의 타이틀인 '탐구생활'은 1979년부터 1998년까지 초등학생이 방학기간 스스로 학습하도록 배포되었던 '탐구생활'에서 차용됐다. 이 교재처럼 이미주의 작업은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단서들을 놀이하듯 탐구하고, 변주하면서 일상을 써내려간 결과물이다. 그는 작고 사소한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며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흐름을 포착한다. 궁극적으로는 '다정함과 연대의 의미'에 관한 질문으로 이를 확장시킨다. 이번 전시는 미완의 탐구노트처럼 전시 공간에서 관객들이 작가가 숨겨둔 단서를 발견하고, 재해석하며 각기 또다른 서사를 완성해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실타래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작가는 작업에 끈질기게 매달렸고, 기묘한 회화들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전시에는 눈코입이 숨겨진 털복숭이 몬스터가 등장하는데 이 일련의 연작이 가장 눈길을 끈다. 환타지 영화나 SF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이 '설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작가의 답이 뜻밖이다. 몬스터가 자신의 '전생'이라는 것이다. 턱복숭이 '설인'은 수영복 차림의 소녀와 손을 맞잡고 물 속을 걷기도 하고, 수줍은 듯 캔버스 뒤에 조각으로 숨바꼭질하듯 설치돼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고교 시절 한 선생님의 '전생체험을 해보자'며 학생들에게 최면을 거셨어요. 어릴 적 이상한 꿈을 많이 꿨는데, 그날 선생님은 '18살인 너희들이 전생을 체험하려면 계단 18개를 내려가 문을 열어야 한다'며 숫자를 천천히 세셨죠. 눈을 감고 숫자를 듣다가 스스로 잠에 빠져들었고 흙바닥이 보였어요. 그 때 내 손을 봤는데 털이 엄청 나있는 거였어요. 너무 놀라웠죠. 친구들이 '너는 뭐였어?'라고 물었지만 온통 털복숭이였던 게 부끄러워 입을 꾹 다물었어요"라고 답했다. 이후 꿈을 꾸면 털복숭이 '설인'이 계속 등장했다.

자신의 무의식을 지배하며 악몽처럼 따라다녔던 '몬스터'는 막상 그림으로 풀어내니 180도 달라졌다. "그 기이한 몬스터가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감추려던 존재를 예술로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2011년이었고, 이후 작은 드로잉에서 대형 페인팅으로, 손바닥만한 도자기에서 제법 큰 조각으로 발전했다.

이미주는 "낯설기 그지 없는 모습인데 사람들이 의외로 친근하게 여기더라고요. 회색의 털로 뒤덮여 얼굴도 없고 아직도 수줍음이 많지만 '설인'은 이제 제 작업에 없어선 안될 메이트가 됐어요"라고 밝혔다. 감추고 싶었던 전생체험이 이제는 작가 작업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핵심이 된 셈이다.

서정아트 1층 전시장에는 커다른 두 눈망울, 막 불꽃이 피어오르는 성냥 등의 조각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질 것같은 긴장감을 던진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이들 작품을 지나면 조각상 '설인'이 등장한다. 내성적이지만 강한 내면을 지닌 존재인 '설인'은 벽을 향해 살짝 뒤돌아 앉아 알쏭달쏭한 내러티브를 선사한다.

2층에서는 깊은 물 속에서 바위, 버섯, 나비, 사과 등과 뒤섞이며 유영하는 소녀를 그린 회화 연작이 관객을 맞는다. 이들 물 속 그림은 작가가 조용한 일상의 관찰에서 시작해 점차 환타지의 세계로 나아가며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탐구와 놀이, 연대와 변형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직조하며, 익숙한 일상에서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작업들인 것이다.

◆이미주 작가는?=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회사에 2년여 재직했다. 친구를 만나러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찾았다가 드로잉 작업을 하게 됐고, 그 그림을 전시하며 순수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예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고, 스페인 마드리드 콜렉시온 솔로미술관및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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