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수확철에···” 평화 멀어져 생업 위태로운 민통선 안팎의 사람들

2024-10-16

농민 김상기씨(52)는 16일 경기 파주시 군내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 과수원에서 배를 수확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큼지막한 배를 따는 손은 바쁘게 움직였고, 흠결이 있는 놈을 걸러내려는 눈은 예리했다. 일꾼들에게 큰소리로 일을 지시하느라 목청도 쉴 틈이 없었다. 과수원 면적은 5000평. 나무에 매달린 배를 모두 수확하면 1000상자쯤 나올 거라고 했다.

김씨는 이날 새벽 민통선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졸이며 통일대교에 도착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민통선 출입이 불허되기 때문이다. 민통선 출입이 불허됐던 전날과 달리 이날은 다행히 출입이 허용됐다. 김씨는 “2014년 무인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흘 연속 출입을 통제당했다”며 “한창 바쁜 시기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민통선 안에선 이른 아침부터 ‘휘우웅’하는 북측의 대남 방송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들으며 일해야 하는 농민들은 ‘귀신이 우는 소리’ 같다고 했다. 한 농민은 “귀곡성이 24시간 계속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만성이 됐다”거나 “불안하거나 무섭진 않다”고 했지만 남북 간에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달리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은 전날 경의선·동해선 도로를 폭파했다. 우리 군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군사분계선 이남 지점을 향해 중기관총·유탄발사기로 수십 발을 사격했다. 군 당국은 농민·관광객의 민통선 출입도 막았다. 민통선 안과 밖에서 이날 만난 시민들은 “정부가 불안을 통제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것이냐”며 높아진 남북 긴장에 불안과 불편을 호소했다.

민통선 안과 밖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발등에 떨어진 가장 큰 문제는 먹고사는 것이었다. 과일을 제때 수확하지 않으면 썩을 수 있고, 기온이 떨어지면 서리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민통선 안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전환식 민북지역 파주농민회 대표는 “어제 굴착기도 빌렸는데 출입이 막혔다”며 “벼와 과일을 한창 수확해야 할 때인데 이런 일이 생기면 눈 앞이 캄캄해진다”고 말했다.

강현철씨(56)도 전날 갑작스러운 통제에 피해를 입을 뻔 했다고 말했다. 수확한 벼를 지역농협에 싣고 간 일꾼이 논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민통선에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했는데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도로를 폭파하자 군이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수확·운반·기계조작 등 3명이 나눠 하던 일을 갑자기 2명이 해야 할 상황이 됐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작업을 중단했다. 강씨는 “날이 맑을 때 그랬다면 혼란이 컸을 것”이라며 “앞으로 한 달은 더 수확해야 하는데 무슨 일이 또 생길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민통선 밖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윤설현씨(57)는 “개성공단 폐쇄와 연락사무소 폭파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지만 솔직히 겁이 나지 않았다”면서도 “지금은 대북전단 살포, 오물풍선, 확성기 설치, 무인기 침투 등 상황이 고조되는 분위기라 물리적 충돌까지 갈까봐 두렵다”고 했다. 윤씨는 “대북전단을 또 날린다는 데 그럼 결국 접경지역이 표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그의 게스트하우스에 오기로 했던 대만인 가족 4명은 예약을 취소했다.

군의 통제에서 배제된 주민들도 있었다. 민통선 안에 있었지만 대피 연락을 받지 못한 이들이다. 전환식 대표는 “땅굴 등 관광지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미리 알고 대피를 했는데 우리에겐 연락이 없었다”며 “평소엔 ‘나오라’고 독촉 전화를 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고 말했다.

통일대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64)는 “결국 정부의 상황통제 능력이 문제”라고 했다. 박씨는 “김정은이 나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그래도 상황을 통제해서 국민에게 안정을 줘야지 1년 중 제일 바쁠 때 긴장을 높이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 사람들도 떠나고 관광객도 갈수록 줄어드는데 언제까지 싸우기만 할 것이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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