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본 차에 밀려 고전하던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할인 카드’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경쟁사들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25%에 대응하느라 허둥지둥하는 사이 새 차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직원 할인’을 모든 소비자에게

포드는 미국의 자동차 관세 발효 시점인 지난 3일(현지 시간)부터 ‘From America For America’(미국에서 미국을 위해)’라는 캠페인을 공개하고 6월 2일까지 모든 새 차 구매자에게 직원 할인가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수익성이 높은 수퍼듀티 트럭 등 일부 모델을 뺀 대부분 차종이 해당한다. 스텔란티스 역시 이달 30일까지 지프, 램, 닷지 등 인기 차종을 포함한 2024년형 모델에 직원 할인가를 적용해 판매한다.
외국 기업이 관세 부담을 가격 인상이나 동결로 흡수할 때, 재고를 빠르게 소진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포드는 미국 내 판매 차량의 80%를 자국에서 생산한다. 물론 상당수 부품을 멕시코 등에서 수입해오지만, 부품 관세는 5월 3일로 예고된 만큼 앞으로 포드에게 약 한 달은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소비자를 흡수할 기회일 수 있다.
현대차·기아 ‘가격 동결’로 버티기

현대차·기아는 일단 버티는 중이다. 지난 4일 현대차 미국법인은 “6월 2일까지 미국에서 판매 중인 모델의 권장소매가(MSRP)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항구한국자동차연구원 자문위원은 “한국 기업들이 2~3개월 치 재고분으로 버티는 동안 한국 정부가 관세 협상을 잘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현지에서 생산하는 차종을 서둘러 늘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올투자증권은 4일 보고서에서 25% 관세에 따른 현대차·기아의 연간 관세 부담금을 각각 6조8000억원, 3조8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미국 현대차 판매 차종 순위 2·4·5·6위를 차지한 엘란트라(국내 차량명 아반떼·13만6698대), 펠리세이드(11만55대), 코나(8만2172대), 쏘나타(6만9343대)는 전량 한국에서 수출한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조지아주 신공장에 한국산 인기 차종 라인을 올해 안에 신설해 현지화를 앞당기는 것이 관건”이라며 “6개월 안에 라인 신설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한다”고 말했다.

유럽차, 가격 인상에 수출 중단도...日 닛산, 현지생산 검토

유럽 고급차 브랜드는 미국 수출을 중단하거나 가격 인상책을 꺼냈다. 영국 재규어랜드로버(JLR)는 성명을 통해 “중단기 전략을 수립할 동안 4월 미국 선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회사는 연간 레인지로버, 디펜더 등 40만 대를 팔았고, 이 중 미국 수출이 약 25%를 차지했다. 이탈리아 수퍼카 브랜드 페라리는 4월부터 미국 판매 가격을 최대 10% 인상했다. 폭스바겐은 미국 밖에서 조립한 차량에 ‘수입 수수료’를 붙여 판매가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프랑스 이네오스도 미국 판매가격을 4.9% 올린다.

닛산은 현지 생산 확대를 검토한다. 닛케이신문은 6일 닛산이 이르면 올 여름 미국 시장의 주력 차량인 ‘로그 SUV’ 현지 생산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닛산은 경영 악화로 올해 미국 생산을 줄이려 했는데, 관세 부담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닛산은 미국 판매량 92만대 중 16%인 15만대 정도를 일본에서 수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