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팔 꺾였다!" 경찰 원맨쇼…그 일가족 풍비박산 났다

2025-08-02

The JoongAng Plus

나는 무죄입니다

하루아침에 가족과 헤어지고 찬란한 시절을 잃어야 한다면 어떨까요. 누명을 쓰고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영화 같은 사건, 삶에 스며든 고통, 무죄를 쟁취한 과정까지. 간결한 판결 기사 뒤 깊은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어느 변호사로부터 10년 동안 재판을 14차례 받았다는 부부의 사연을 들었다. 사건 현장을 찍은 영상이 있다기에 궁금해져 찾아봤다. 어두운 밤 한 사내가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고, 주변엔 부인과 아들로 보이는 사람도 서 있었다. 이내 한 경찰관이 팔이 꺾인 듯한 모습으로 상체를 숙였다. 이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동영상 속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영상 속 남성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박철(60)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전화를 받은 건 한 여성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철 선생님 번호 아닌가요?”

“누구신가요? 저는 부인이고요, 제가 전화를 주로 받고 있어요.”

다소 의아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이날의 첫 통화는, 얼마 뒤 그를 만나고 단번에 이해됐다.

서울에서 차로 3시간쯤 달려 도착한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마을 초입부터 이어진 구불구불한 길엔 초록과 흙냄새가 가득했다. 배추와 파 등이 심긴 밭길을 따라가다 보니, 주황빛 천일홍이 다발처럼 핀 시멘트벽이 눈에 들어왔다. 꽃길을 지나 내려가니, 노란 메리골드와 분홍 에키네시아, 연보라 구절초가 가득 핀 마당이 나왔다. 참깨·고추가 심긴 텃밭과 나무로 만든 흔들그네까지, 목가적인 장면 주변에선 흙자갈 밟는 소리만 들렸다.

경기도 안산에서 가구점을 운영했던 박씨는 2008년, 길을 잘못 들었다가 우연히 이곳에 왔다. 스무 살 무렵부터 전원 생활을 꿈꿨던 그였다. 이미 성인이 된 딸과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도 곧 각자의 세상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부부가 인생의 새 막을 시작하기에 적기였다. 그는 귀농을 결심했다.

그가 말을 더듬는 이유

그런데 이곳에 온 여정을 설명하던 박씨의 말과 말 사이에 빈 곳이 자주 생겼다.

“몇 년 전부터 틱 (장애)… 비슷하게 와서… 말…을 좀 더듬습니다. 그래도 요즘엔 많이 나아졌어요.”

부인 최옥자(59)씨가 국화꽃차를 내왔다. 나무 탁자와 의자가 있는 테라스에 앉았다. 그는 남편 박씨를 보며 말했다. 굉장히 많이 더듬었어요. 한 4~5년 된 것 같은데.”

처음 통화했던 날을 이야기하니 그가 설명을 이었다. “친구나 부모님 전화는 저 사람이 받고,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아요.”

박씨가 말을 이었다. “작년부터 여기 화단을… 꾸민 거예요. 잡념도 잊고 억울했던 생…각이 들면 풀을 뽑기도 하고.

악몽의 시작, 경찰과 실랑이

이토록 평화로운 곳에서 왜 부부는 악몽 같은 10년을 보내야 했을까. 비극이 시작된 건 2009년 6월 27일 밤. 박씨가 숲해설가 자격증 수업을 수료한 기념으로 저녁 뒤풀이를 간 날이었다. 이날 술을 마신 박씨를 대신해 부인 최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친구네 집에서 공부하던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데리고 귀가할 예정이었다.

아들이 서 있는 곳까지 약 150m 지점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핸들을 돌린 최씨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음주 단속이었다. 하지만 세움 간판도, 경광봉도 없었다. 박씨는 경찰에게 “왜 갑자기 뛰어드냐”고 항의했다. 실랑이는 차 밖으로까지 이어졌다. 경찰 세 명이 박씨를 둘러쌌고, 최씨는 남편을 말렸다.

옥신각신하던 중, 한 경찰이 박씨 쪽으로 다가가다가 소리를 질렀다. “아, 아아, 아악!” 당시 경찰이 촬영한 영상에는, 그가 고성과 함께 팔이 꺾여 몸을 숙이는 장면이 담겼다. 하지만 박씨의 손이 경찰의 손에 닿았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 정면에 아들이 서 있어서 가려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하지만 그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팔을 꺾지 않았는데 경찰이 혼자 넘어지는 것처럼 연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땐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될 것이란 걸 몰랐다.

정식 재판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2010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경찰관이 팔이 비틀린 듯 쓰러졌던 동영상이 유력한 증거로 채택됐다.

경찰들을 제외하면, 현장에 있던 건 세 가족뿐이었다. 박씨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것도 가족뿐이었다. 부인 최씨가 남편의 2심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

최씨가 남편 재판에서 한 증언이 최씨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검찰은 최씨를 위증죄로 재판에 넘겼다.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남편 박씨의 유무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되기도 전이었다. 2011년 4월, 최씨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부인 이어 남편까지 위증죄로 기소

최씨의 재판엔 남편 박씨가 증인으로 설 수밖에 없었다. 차마 아들을 법정에 세울 순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부인의 2심 재판에서도 무죄를 주장했다.

박씨는 이날 이야기를 하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었다. “증…언을 마치고 주차장을 나가기도 전에… 전화가 왔어요. 이번엔 저를 위…위증죄로 기소한 거예요. (부인에 대한 재판에서 증언을 마친 뒤 주차장에서) 차도 안 뺐는데 무슨 소리냐고 검…사님도 아직 법정에서…그새 어떻게 기소를 하냐니까…검사가 (기소 관련 내용을) 문자로 보냈대요.”

부부의 재판은, 박씨의 공무집행방해·위증죄 재판과 최씨의 위증죄 재판까지 세 개가 됐다. 재판마다 3심까지 간다면, 총 9차례의 재판을 거쳐야 했다.

최씨는 26년 차 공립유치원 교사였다. 교육 공무원은 징역형을 선고받으면 파면된다. 2012년 12월 27일,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하면서 최씨는 일자리를 잃었다. 파면과 동시에,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대출 받은 5000만원을 2개월 내 완납하지 못해, 5000만원의 빚은 총 3억원이 됐다.

벌금 200만원형에서 시작된 재판은 5년 넘게 이어졌고, 부부의 삶은 완전히 황폐해졌다. 더구나 7번째 재판까지 모두 유죄.

상황이 반전된 건 8번째 재판, 그러니까 남편 박씨의 위증죄 2심 재판이었다.

판사는 처음으로 경찰이 찍은 동영상을 국과수로 보내 화질 개선을 요청했다.

10년간 총 14번의 재판, 귀농 부부의 지옥 같은 법정 싸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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