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깍듯했다가 "총장!"…노무현 돌변케 한 김각영 한마디

2024-10-02

오늘의 더중앙플러스 - 특수부 비망록

더중앙플러스는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시리즈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과 교훈을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와 함께 보면 좋은 시리즈, ‘특수부 비망록’을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와 같은 파격적인 시도는 검찰과 권력 사이의 긴장감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검찰 특수부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제2의 화양연화를 맞이할 뻔했으나, 노 대통령의 서거로 그 꿈은 무산되었고, 이후 검찰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특수부 비망록'의 한 편을 전문 무료로 공개합니다.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특수부 비망록'과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시리즈에서 더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49

특수부 비망록 ▶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36

특수부 비망록 5회 - 盧, SK비자금 사건 폭발력 미리 알고 전전긍긍

2003년 3월 9일. 전국에 생중계된 ‘검사와의 대화’ 도중 노무현 대통령이 이른바 ‘검찰 상층부 불신’ 발언을 내놓자 시청자들은 뜨악했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의 말의 표적이 된 검찰은 뒤집어졌다. 대구고검장이던 송광수는 서울에서 TV를 보다가 대구로 급히 내려가 향후 사태에 대비했음은 지난 3회에서 소개한 그대로다. 불신 발언 하루 만에 김각영 검찰총장은 사임했다. 원래 노무현은 DJ정부 말기에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김각영을 바꿀 계획이 없었다. 검찰총장 임기제(2년)를 무력화할 명분도 없었다. 그러나 말 한마디로 검찰총장 전격 교체의 효과가 났다.

그 발언은 돌발적으로 나온 걸까, 아니면 계산하고 작심한 결과였을까. 이번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여러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손가락은 후자를 가리킨다. ‘승부사’ 노무현의 승부수였다. 비화가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뒤인 2003년 2월 27일 민변 부회장이던 강금실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등 18개 부처 장관 임명 인사를 단행했다. 며칠 뒤 김각영을 청와대로 불러 면담했다. 처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서울지검 형사9부가 수사 중이던 SK그룹 분식회계 및 비자금 사건 얘기가 나오면서 겨울바람이 쌩~하고 불어닥치더니 내내 얼음장처럼 냉랭해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고검장 출신 D변호사의 전언.

“그날 김 총장이 청와대에 갔더니 노 대통령이 문 앞까지 나와 ‘선배님 선배님’하며 영접했대. 그러다 대통령이 SK 비자금 사건 수사 얘기를 꺼내며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고려해 달라는 취지(※최태원 회장 구속 상태, 담당검사 한동훈)로 이야기를 하더래. 김 총장이 ‘예, 알겠습니다’ 하면 끝나는 건데 ‘검사들 내 마음대로 안 된다’‘검토해 보겠다’는 취지로 답했대. 그다음부터 호칭이 선배님에서 총장으로 싹 바뀌었대. 분위기가 싸해진 거지. 돌아갈 때 배웅도 안 하고 테이블에서 잘 가시라고 하고는 면담이 끝났다네.”

D변호사에 따르면 김각영은 그날 청와대를 나오는 길에 건물 공사 때문에 외교부 청사로 나와 있던 민정수석실에 들러 문재인 수석을 만났다. 그에게 “필요시 알려주면 사표를 내겠다”고 통보하고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왔다.

3월 9일 검사와의 대화에서도 SK 사건 얘기가 튀어나왔다. SK 수사에 참여 중이던 서울지검 형사9부 이석환 검사는 현장에서 “수사 외압이 있었는데 여당 중진 인사도 있고 정부 고위 인사도 있다. 혹자는 ‘다칠 수 있다’며 인사 보복을 시사했다”고 폭로, 파문을 일으켰다. 노 대통령은 “외압 인사들의 명단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경제에 미치는 상황을 면밀히 고려해 달라고 간곡히 상의하는 것이었다면 괜찮겠지만 ‘너 다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누군지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에게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

다음 날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이 “최태원 SK㈜ 회장 구속 직후(2월 말께) 김각영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밝혔다. ‘외압 파문’이 증폭됐다. 이상수는 “경제에 미칠 여파를 고려한 단순한 우려 수준이었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그냥 봐달라는 것과 경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해 대응해 달라는 것 등 두 가지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상수는 대선 당시 선대위 총무본부장이었다. 그는 “SK도 (대선 당시) 후원금을 상당히 많이 낸 기업에 속한다”고도 했다. 자연스레 대선자금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사자들은 부인하거나 함구했다. 결국 이상수를 둘러싼 의혹은 7개월 뒤(10월) 대선자금 수사 때 그가 최도술과 함께 가장 먼저 소환조사를 받고 구속까지 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노 대통령의 선처 부탁, 이상수의 김각영에 대한 전화가 순전히 경제 상황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었는지, 그냥 봐달라는 것이었는지 내심의 의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노 대통령과 이상수는 공히 SK 비자금 문제가 나중에 대형 사건으로 번질 수 있다는 걱정을 일찌감치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검찰은 3월 11일 SK그룹에 대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태원 회장,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 등 2명을 구속기소하고 손길승 등 8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최 회장이 구속된 사정을 감안해 손길승을 불구속기소한 외에 선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처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울지검 형사9부가 SK그룹 김창근 등으로부터 한나라당 100억원 제공 진술을 녹음한 건 수사 결과 발표 이틀 전(3월 9일) 일요일, 검사와의 대화가 진행 중일 때였다. 막내 한동훈 검사(현 법무부 장관)가 이인규 부장과 상의해 용산 전자상가에서 소니 디지털 녹음기를 구입한 뒤 8시간 동안 대화를 녹음했던 것이다.

“그때 한나라당에 100억원을 줬다는 진술도 받았지만 노무현 쪽 최도술 11억원에다가 이상수 20억원도 같이 진술을 받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직후라서 조서화하는 데는 응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상황을 녹음했던 것이다.”(한 검사 측 관계자)

하지만 진술만으로는 전면 수사에 착수하기는 어렵다. 증거를 못 찾아내면 역풍을 맞기가 십상이다. 밥을 지으려면 뜸이 먼저 들어야 하듯이 때를 더 기다려야 했다. 송광수 검찰총장 취임 후 보고 및 내사가 시작됐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지연됐다.

“원래 대선자금 수사가 딱 시작되면 한동훈 검사는 여름에 대검 중수부에 파견 가기로 돼 있었다. 그게 늦어졌다. 다른 기업들도 수사를 해야 한다는 판단에다 '대북 송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현대 비자금이 드러난 게 겹쳤다. 현대 비자금이 대선자금인지 확인하기 위해 현대를 수사했다. 권노갑·박지원 등의 혐의가 불거졌다. 새 총장팀은 그 수사를 대선자금 수사의 전초전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는 바람에 수사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더 진전을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렸다.”

그 사이 2003년 7월 굿모닝시티 윤창열(구속) 전 대표의 정·관계 로비 수사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의 4억원 수뢰 혐의가 포착됐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정대철은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대선자금이 200억원”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검찰은 ‘구체적 불법행위의 단서가 잡히면 수사할 수 있다’는 원칙적 수준의 언급만 했다. 이후 대검 중수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SK해운 분식회계 등에 대한 형사9부와 금융감독원 조사 자료, 이미 확보한 100억원 제공 진술을 근거로 SK 고위층을 불러 기초조사에 들어갔다. 8월 말 증권선물위원회가 SK해운 분식회계 사건을 고발한 것도 검찰과의 교감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수사가 물밑에서 급박하게 돌아가자 김각영 총장을 향했던 노 대통령의 선처 부탁은 송광수 총장에게로 옮겨갔다. 일각에서는 2003년 4월 3일 청와대에서 송 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오찬 때 ‘국민 아래 대통령, 대통령 아래 검찰총장이 있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따라야 한다’며 지휘계통에 대한 확답을 받으려 했던 것도 SK 수사와 관련돼 있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다음 일화는 그 같은 추정에 신빙성을 더한다.

〈6회는 ‘“한번 거절하면 다음은 쉽다”…세 차례 '노(NO)'라고 말한 송광수’로 이어집니다〉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49

특수부 비망록 ▶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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