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온라인에선 계엄 및 집회 관련 가짜뉴스가 기승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3차 민중 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성모(27)씨는 때아닌 ‘국적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대만 밀크티 우유팩으로 만든 촛불이 한 방송 카메라에 잡히면서다. 우유팩에 한자가 쓰여 있는 장면을 본 일부 누리꾼은 엑스·블로그 등 SNS에 “중국인들이 탄핵 집회에 동원된 증거가 나왔다” “탄핵집회에 중국인이 30%, 공산당 개입 의혹”과 같은 게시글을 올렸다.
하지만 성씨가 중국 국적의 집회 참여자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제로 웨이스트샵(생산·유통 과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한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곳) ‘알맹상점’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최근 대만 여행을 갔다가 다 마신 밀크티 우유팩 3개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가져왔다. 성씨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남은 우유팩을 씻어 재활용하는 일은 삶의 일부와도 같다”면서 “이런 논란이 생길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고 저로 인해 같이 오해받는 동료들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밝혔다.
업체 측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루머는 또 다른 루머를 낳으며 재확산하고 있다. 극우 유튜버 감동란tv는 이후에도 “중국어로 적힌 플래카드가 버젓이 있다”며 집회에 중국인이 가담했단 의혹을 제기했으나, 이는 지난 7일 도쿄 우에노역 인근 촛불 집회에서 사용된 ‘일본어 플래카드’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는 “가게 SNS 채널로 ‘신분증을 인증하라’는 메시지가 하루 20개씩 날아온다”며 “처음엔 일부 극단적인 정치 커뮤니티에서만 떠도는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는데 의식 있는 일반인들까지 선동되는 걸 보며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정치적 혼란 속에 거짓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상 검증을 요구하는 현상은 연예계로도 번지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데이식스(DAY6) 멤버 도운은 최근 자신의 SNS에 드럼 연습 영상을 올렸다가 군복 바지를 입은 채 연습을 했다는 이유로 뭇매를 맞았다. 팬들 사이에서는 “도운이 계엄군 지지 의사를 밝히기 위해 고의로 군복을 입었다”는 루머가 퍼졌다. 데이식스 팬덤 ‘마이데이’ 소속임을 자칭한 일부 누리꾼은 지난 9일 도운의 탈퇴를 요구하는 성명문까지 발표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JYP는 “(데이식스 관련) 사실무근인 루머의 양성과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강경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극단적 정치 분열에 따른 가짜뉴스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10월 ‘윤석열 퇴진 중고생 촛불집회’ 당시 온라인상에는 주최 측의 포스터가 조작된 채 유포됐다. ‘촛불 ZOMBIE(좀비) 시민연대’ 이름을 단 해당 포스터에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 봉사활동 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민연대는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어떠한 단체 공식 포스터에도 이 같은 내용을 명시한 적 없으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 당시에는 편집된 CNN 뉴스 영상이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퍼졌다. 실제 CNN 뉴스 위에 ‘김정은 촛불시위 이용 도발하려고 함’ 등의 한국어 자막을 덧씌우고 이어서 북한 단체의 깃발과 세월호·촛불 문양 사이 연관성이 있다는 거짓 정보를 짜깁기한 영상이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분열이 양극화될수록 가짜뉴스 역시 극단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허위조작 정보와 상업적 이익이 결합하는 생태계가 이미 만들어져 있다”며 “정치적 관심도가 올라가는 이 시기를 틈타 조직적으로 정보를 가공, 편집해 재확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짜뉴스를 막는 것은 결국 시민 의식을 가진 평균의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