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그대. 미래의 계엄사령관'
최근 SNS에서 떠도는 '2025학년도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모집' 합성 이미지엔 이 같은 문구가 담겼다. 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에 지난 24일 송치된 노상원(육사 41기)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전역 뒤 역술인으로 활동한 사실을 비꼬듯 그의 얼굴은 무당 복장과 합성됐다. 1·2차 시험은 사주풀이와 살풀이 굿으로 치러지며, 합격자 발표는 롯데리아에서 이뤄진다고도 쓰여 있다. 이를 본 네티즌은 "오죽하면 이런 짤(인터넷 유행요소를 응용해 만든 사진)이 만들어지겠나"라고 반응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계엄군 지휘관으로 출동했거나 계엄을 모의한 이들 대부분이 육사 출신이라는 점을 놓고서 SNS에선 관련 패러디물이나 조롱·비판 글이 넘쳐나고 있다. 육사 공식 페이스북엔 최근 "대한민국 내란 정예장교 양성의 요람" "육사는 생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나. 계엄 주역이 모두 육사 출신이다" "폐교하라"와 같은 공격성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또 지난 25일 한 네티즌이 엑스(X)에 "지난 10월 북한강 살인 사건도 육사 출신 양광준이 저질렀다. 두 달 동안 가장 많은 범죄자를 양산해낸 곳이 육사"라고 적은 글은 26일 오후 기준 엑스에서 31만 회 넘게 조회됐다. 육사 65기로 알려진 양광준은 내연관계가 들킬까 봐 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강원도 화천 북한강에 유기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육사 생도 사이에선 "(김 전 장관 등이) 육사 명예를 무너뜨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 전 사령관 외에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육사 38기,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작성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육사 48기, 노 전 사령관과 '롯데리아 회동'을 가졌던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육사 50기로 입교했다. 육사 2학년 생도 A씨는 이날 한 언론에 "육사가 엘리트 군인 양성 기관이라는 자부심이 망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생도가 외박 중 제복을 입고 택시를 타려고 했다가 승차 거부를 당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육사 출신 장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육사 졸업 후 위관급 장교로 복무 중이라는 B씨는 지난 16일 뉴스1에 "우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수모를 겪는 게 같은 군인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등이 질타받은 뒤 나온 발언이다. 일부 육사 기수는 SNS 단체대화방을 폐쇄하고 외부 접촉을 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사태 불똥은 육사 준비 수험생에게도 튀었다. 서울 강남구 한 입시학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지난 11월 재수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사관학교 특별반을 꾸리려 했으나 정원을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이 학원 관계자는 지난 22일 뉴스1에 "(계엄 사태로) 최근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그런 거 같다"며 "매년 선호도가 낮아지는 추세였는데 올해 특히 심하다"고 말했다. 사관학교 입학을 희망하던 일부 수험생이 육사 진학을 망설이고 있다는 고민도 들려온다.
입시계에선 최근 하락세인 육사 선호도와 맞물려 내년 지원자 수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육사 입학처에 따르면 올해 7월 진행된 1차 시험 경쟁률은 29.8대 1로, 2020년 44.1대 1보다 낮아졌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뉴스1에 "최근 계엄 사태가 하락세인 육사 선호도에 불을 붙이는 형국"이라며 "1차 시험 응시자의 70%는 허수다. 30%를 차지하는 마니아층 지원자들도 내년부터 이탈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혜선([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