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협업하는 국내 반도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이 중국 사업을 일제히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의 공급난을 겪는 중국이 대안으로 삼성전자를 찾으면서 생태계를 함께 구축한 국내 디자인하우스들의 사업 기회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테슬라와 애플 등 미국 빅테크와 계약에 이어 삼성전자와 디자인하우스들이 중국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한국 파운드리 산업의 전망도 밝아지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 파운드리의 디자인하우스 기업들이 중국 법인 설립이나 사무실 개소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딥엑스와 2㎚㎚(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계약을 체결한 가온칩스는 내년 초 중국에 법인을 설립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해 법인 설립을 논의하다 속도 조절에 나섰던 가온칩스는 최근 중국 고객사들의 요구가 늘자 원활한 현장 대응을 위해 법인 설립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에이디테크놀로지도 2023년 중국 상하이에서 벌이던 사업을 접은 바 있지만 최근 중국 고객사 일감이 늘면서 재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세미파이브는 최근에 중국 기업들과 신규 계약 협의를 확대하고 있고 위더맥스 역시 최근 중국 법인을 설립하고 중국 고객사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중국에 진출하는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와 파운드리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팹리스는 제조 공정인 파운드리의 세부 사항까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팹리스가 완성한 설계도면은 파운드리 공정에 최적화된 것은 아니다. 반도체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의 설계도면을 파운드리 공정에 맞게 조정하는 작업을 맡는다. 이 때문에 디자인하우스와 파운드리는 공정과 설계 등 영업 기밀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디자인하우스 입장에서는 파운드리 기업 한 곳과만 혈맹을 맺을 수밖에 없다.
국내 디자인하우스들은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중국 시장에서 최근 몸값이 뛰자 자연스럽게 현지에 진출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중국에서 주목받는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가 있다. 미국 산업안보국(BIS) 규제로 삼성전자와 TSMC는 중국 화웨이 등 제재 리스트에 오른 중국 팹리스 업체의 주문을 수용할 수 없다. 미국이 최종 사용자와 적용 반도체 공정 등에 따라 제제 위반, 거래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 제재가 확대되면서 화웨이 같은 대형 중국 팹리스들은 자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화훙반도체로 몰리고 있고 중국 시장에서는 파운드리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파운드리 기업의 생산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현지 팹리스들은 삼성전자를 적극 이용하려 하고 있다. 마침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첨단 공정 역시 안정화되면서 연일 가격을 높이는 대만 TSMC의 대안으로 삼성이 급부상한 측면도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일감이 많아지면 디자인하우스들에도 기회가 찾아온다. 국내 팹리스는 150~200개 사 수준인데 중국에는 3400개 이상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중국 팹리스 업체들을 뒷받침할 디자인하우스 업계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어서 삼성 파운드리와 오랜 협업으로 노하우를 축적해온 한국 디자인하우스들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는 미국의 대중 견제가 지속되고 있지만 다양한 고객층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면 국내 파운드리 산업의 회복세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한 디자인하우스 관계자는 “중국은 인력이 많아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간 분업이 잘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 “특히 삼성 파운드리와 협업에서는 국내 기업처럼 설계 초기부터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경험 있는 곳이 없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h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