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함 기계’로서의 책 : 히틀러는 책벌레였다 [2월의김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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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2025년 2월 마지막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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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사람 : 김스피

받는 사람 : 연구자님

‘산만함 기계’로서의 책

[2월의 김스피]

울산대공원에서 지난 19일 발견된 녹색비둘기. 대만 등 온대숲에서 주로 서식하고 울산에서 발견된건 처음이라고 하네요. 종가시나무에 머물며 도토리를 따먹기도 했다고 합니다(링크) / ⓒ윤기득

>2월 레터의 비하인드 : ‘산만함 기계’로서의 책

>2월의 해찰 피드 : #관심비즈니스 #재개봉열풍

>2월의 김스피 책장 : 작은 책꽂이

>알림 : 플랫5주년 생일카페 초대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연구자님께선 2월 한 달을 잘 보내셨나요? 한동안 급작스레 추워졌었는데요. 이번 주말은 거의 완연한 봄날씨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2월 첫째주에는 필터버블(💌진짜로 필터버블이 문제인가? : 본다는 것의 어려움)과 관련된 레터를 보내드렸고요. 지난주엔 집중력(💌도둑맞은 집중력의 시대? : 집중력이 왜 필요한가)이라는 주제로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짧게 각각의 레터의 핵심 메시지를 소개해보자면, [필터버블] 회차의 경우 - 통상 '필터버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른 의견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단순히 다른 의견에 접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고요.

[집중력] 회차에서는, '집중력'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단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냐가 중요하며, 집중과 산만함 사이의 경계는 의외로 모호한데 왜냐면 우리는 애초에 세상에서 뚝 동떨어져 살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해보았습니다.

저는 지난 레터를 보내고 나서도, ‘산만함’이라는 키워드에 왠지 오래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통상 산만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하는데요.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이 말했듯,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만남(조우)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역시 산만함에 포함됩니다. 우리는 아무리 자신의 목적에 집중하더라도, 때로 사람이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어떤 영화를 보고 마음이 쿵 내려앉거나, 어떤 사람의 불행을 보고 나서 갑자기 삶이 180도 바뀌고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하게 됩니다.

반면 만약 우리가 항상 자신이 세운 목적을 향해 한눈 팔지 않고 '초집중'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서로 연결될 수 없을 테고요. 다들 제각기 자기 버블에만 갇혀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어떤 두 가지 종류의 독서에 대해서 간단하게 해찰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집중하는 독서와 산만한 독서입니다.

👤2월 레터의 비하인드 : ‘산만함 기계’로서의 책

연구자님은 책을 집중해서 읽으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산만하게 읽으시는 편인가요?

여기서 ‘집중’과 ‘산만’은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집중적인 독서란 자신의 세계 안에 머무르는 독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직선적 독서, 효율적인 독서를 뜻하고, 산만한 독서란 목적과 별개로 자신의 세계 밖으로 뻗어가는 독서를 뜻합니다.

제가 이런 좀 낯선 구분법을 떠올려보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지난 레터를 쓰기 위해 <집중력 설계자들>을 읽으면서, 의외로 과거의 수도자들은 때때로 책을 집중력을 망치는 ‘산만함 기계’로 취급했었다는 대목을 보고 느낌표가 떠올랐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오늘날 통상 책을 '집중'하면서 읽는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책은 오랜 세월 '산만함'의 도구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재미난 책은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대신, 딴짓을 하게 만들기도 했고요.1)

중세 시대에는 책이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한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다양한 이야깃거리(허무맹랑한 신화든 먼 나라의 실제 이야기든)들을 품고 있어서 딴청을 피울 수 있었기 때문에 - 읽는 사람을 ‘산만’하게 만든다며 “책을 멀리하라!”고 외쳤죠. 지금 시점에선 어리둥절해지는 일이긴 하지만요.

중세시대에 제작된 화려한 필사본 책. 수도자들은 눈길을 끄는 그림과 글씨 등을 통해 성경의 가르침에 집중하기도 했지만, 한편 성경과 관련 없는 흥미진진한 내용을 접하고 '산만해지게 될까봐'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왼쪽) 저는 대체로 제 삶이라든지 목적에서 벗어나 다양한 세계, 관점을 살펴보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많은데요. 예를 들면 지난 레터에서 읽어보았던 <자기 땅의 이방인들>은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을 인터뷰한 것으로, 엄밀히 저와는 딱히 관련이 없는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심지어 저자인 혹실드(감정사회학자, 좌파)에게 있어서도 반드시 알아야하는 세계는 아니었습니다). 이런 세계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건 - 일견, 완전 쓸데없고 산만한 딴짓이라고 할 수도있죠. / british library(링크), Getty Image

물론 중세시대에 모든 독서를 막았던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수도자들 역시 중요한 가르침을 익히기 위해선 이 신문물을 살뜰히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제가 주목해보고 싶었던 것은, 책이 ‘산만함 기계’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레터에서도 살펴보았듯, 실제로 산만함과 집중의 경계는 모호하며 자아를 넘어 세계와 연결되는 종류의 산만함은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책이 집중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 우리를 산만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혀 산만한 방식으로 읽지 않는 사람의 독서는 오히려 비독서보다도 더 위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궁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최근 예상 외로 꽤 흥미롭게 밑줄을 쳐가며 읽었던 한 권의 책을 떠올렸습니다. <히틀러의 비밀서재>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Hitler‘s Private Library로 직역하면 ‘히틀러의 개인적인 서재’ 정도일텐데요.

책에서 저자는 히틀러의 수많은 장서들 가운데서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10권을 꼽아 그 책의 내용 및 책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이 아니라, 심지어 ’서재‘에 대한 평전이 나올 정도라면 그 사람이 엄청난 장서가일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데요.

실제로 히틀러는, 비록 대학에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평생 꾸준히 ’독학자‘로서 책을 사모으고 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은 책이 사망할 시점에는 무려 총 1만6000여권에 달했다고 하고요. 책이 얼마나 많았으면, 심지어 그는 살던 아파트 화재보험을 들 때 보험 특약 사항에 ‘책’을 넣기도 했을 정도라고 하죠.

1930년대에 히틀러의 소장 도서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 히틀러는 표준 보험 조항에 ‘책 포함’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티머시.W.라이백, <히틀러의 비밀 서재>(이하 동일)

<히틀러의 비밀서재> 책 표지 (왼쪽) 1934년 나치당 본부의 자기 책상에서 책을 읽고 있는 히틀러의 모습. 그는 학력이 낮다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모으고 또 읽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 글항아리, cordon press

히틀러는 단순히 ’책 수집광‘이었던 게 아니라, ’실제로‘ 책을 많이 읽기도 했습니다.

가정부 등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난동으로 인해 감옥에 갔을 때 “이제야 마음 놓고 그간 못읽었던 책들을 맘껏 읽을 수 있겠다”며 즐거워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젊은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평생 밤마다 몇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쿠비제크는 […] ”책은 히틀러의 세계였다”라고 회상했다 […] (과거 빈, 뮌헨 시절 젊은 히틀러와 함께 살았던) 루돌프 호이슬러는 룸메이트(히틀러)가 새벽 두세시까지 두꺼운 책을 읽었다고 회상했다…

마르가레테 미틀슈트라서(히틀러의 가정부)는 밤마다 돋보기안경, 책한권, 차 한잔을 준비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치열하게, 심지어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책을 읽었다 […] 헤르베르트 되링은 에바 브라운이 밤늦은 독서를 방해했다가 히틀러에게 호되게 질책당하던 날을 기억해냈다.

그야말로 책벌레라고 할 만한 삶인데요. 그냥 여기까지 적고서 깜짝 놀라고 만다면, 그저 ’서프라이즈‘ 프로그램에 나올만한 - 역사적인 독재자의 의외의 면모에 대한 좀 기이한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의외의 사실을 접한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며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 꼼꼼하게 한 가지 질문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대체 왜 그렇게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었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서재‘의 분석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히틀러가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으면서도 그처럼 참혹한 일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소 건조한 문체로 그의 삶과 문헌을 분석한 이 책을 읽으면서, 몇군데의 의미심장한 대목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두 주제는 이어져있습니다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쓸모가 명확한 독서들 :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2. #자신의 ’목적‘에 집중한 사람 : 자기 확신을 강화하기 위한 독서

1. 한 사람의 책꽂이는 곧 그 사람을 드러내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단서라고도 하죠.

히틀러의 서재에는 주로 쓸모가 명확한 책들(그의 입장에서)이 꽂혀있었습니다.

생전 그의 책꽂이에는 자기계발서부터 과학, 역사, 예술 관련 책까지 꽤 많은 책들이 두서없이 꽂혀있는 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전투, 전술 등과 관련된 책이었다고 하는데요.

패전 이후 미군이 히틀러가 마지막에 숨어있던 벙커를 습격했을 때 히틀러의 방을 살펴보고선 아래와 같은 보고를 남겼다고 합니다.

“방의 맨 끝에 안락의자와 독서등이 놓여있었다. 책은 대부분 예술, 건축, 사진, 군사작전 및 전쟁역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흩어져 있는 책들을 급히 검토해보니 문학류는 특히나 없었고 연극이나 시 관련책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라고 보고했다.2)

히틀러 사후 그의 장서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프레더릭 오에츠너에 따르면, 1만6000권 가운데 군사 분야 저작(역사, 군사학 등) 이 7000권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건축·그림·연극 등에 대한 예술 서적(1500권), 나머지는 전세계에서 입수해 발췌번역한 점성술·심령론과 관련된 책들 그리고 영양에 대한 책 등이었다고 합니다.

히틀러에게 있어 평생 독서는 대체로 즐거움이나 해찰, 산만함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도 그에게 있어 책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이미 확고하게 정해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 철저히 자신의 승리와 자기계발을 위한 생산적인 도구였죠.

책을 향한 히틀러의 이런 열정은 여가를 즐기거나 재미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독서는 그에게 지극히 심각한 일이었다”

물론 목적에 따라 책을 읽는 것 자체, 자기계발을 위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목적에 따라 다양한 책을 읽곤 합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만‘ 책을 읽게 될 때겠죠. 이야기는 아래로 이어집니다.

2.자신의 ’목적‘에만 집중한 사람 :

핵심부터 말하자면, 그는 기본적으로 이미 책을 읽기 전부터 목적을 정해두고 거기에 맞는 것들만 취사선택 하는 방식으로 독서를 했습니다.

자신의 목적, 신념에 맞지 않는 정보들은 가차없이 버렸죠.

히틀러는 거의 평생 책을 매일같이 읽는 습관이 든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름의 책 읽기의 꿀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읽은 것들은 대체로 곧바로 흡수해서 능란하게 써먹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오래전에 읽은 인상적인 책들도 기억에서 되살려낼 수 있는 능력자였습니다. 그는 생전 주변에 자신의 책 읽기 방법에 대해 이렇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고 하죠. 이 꿀팁은 히틀러의 '집중적 독서 습관'을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보여줍니다.

히틀러는 독서를 사전에 이미 형성된 관념의 ‘모자이크’를 채우기 위해 ‘돌’을 모으는 과정에 비유했다. 그는 차례나 색인을 살펴본 다음에 해당 장을 펼쳐서 ‘쓸 만한’ 정보를 조금씩 모았다. 때로는 결론부터 읽어서 무엇을 기대할지 사전에 판단했다.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필요하거나 일반적으로 알아두면 유용할 정보를 ‘즉시’ 파악하는 기술을 연마하라고 독자에게 권했다.

“이런 방식으로 습득한 지식이 기존에 상상으로 그렸던 이런저런 주제의 그림과 잘 조화되면 그림을 수정하거나 보완하여 그 지식의 정확성이나 명확성을 높인다. 이런 독서법을 지킬 경우, 살다가 갑자기 검토하거나 대답해야 할 질문이 우리 앞에 던져지면 기억은 즉시 기존의 그림을 기준 삼아서 그 질문과 관련해 수십년간 모아두었던 개별 항목을 모두 끌어낸다…”

이처럼 그는 어떤 것을 보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적을 미리 정해두고, 거기에 맞지 않는 정보를 버려내는 식으로 - 자신의 기존 믿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책을 골랐고, 자신의 세계관에 불합리하고 불편하고 맞지 않는 퍼즐조각은 가차없이 버리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

이런 태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책이, 그의 서가에 꽂혀있던 헨리 포드(Henry Ford·포드 자동차 창립자)의 반유대주의적 내용을 담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국제 유대인the international jew>이었습니다.

1922년 12월 20일 수요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링크). 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히틀러는 자신의 집무실에 커다란 헨리 포드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그의 책을 쌓아두었다고 합니다. (왼쪽) 국내에도 번역된 적이 있는 헨리 포드의 극단적인 반유대주의 사상을 담은 <국제 유대인>(링크) / Newyork times, 리버크레스트

이 책에서 포드는 ‘시온 장로 의정서’*에 대해 썼는데, 그것이 위조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설령 증거가 거짓이어도 내용이 진실이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기상천외한 논리를 내놓았죠.(예를 들면, 만약 외국인이 많은 동네의 범죄율이 높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반박증거를 들이대도 - 여튼간에 외국인이 위협적인 건 진실이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식입니다) 히틀러는 이런 괴상한 논리를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똑같이 반복했다고 하죠.

*시온 장로 의정서 = 전세계를 정복하려는 유대인의 계획을 담고있는 내용의 책으로,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20세기 초반의 위서(링크)

<시온 장로 의정서>가 위조라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왔을 때도 포드는 이를 묵살하고 내용을 꾸며냈다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묘사했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이 편협한 논리를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모방했다. 히틀러는 <시온 장로 의정서>에 대해 “폭로된 내용이 어느 유대인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관심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섬뜩할 정도로 확실하게 유대인의 본성과 행동을 드러내고 그들 내부 상황뿐 아니라 궁극적인 최종 목표까지 폭로한다는 점이다.”라고 썼다.

그는 거의 평생 이런 방식의 ’관점‘을 견지하며, 자신이 틀렸을 일말의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그의 독단적인 세계관은 단지 한 사람의 망상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비단 독서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에선 히틀러가 “내 햇살”이라고 부르며 오랫동안 친조카처럼 아끼고 돌보았던 여성 헨리에테*에 대한 일화가 나오는데요.

*헨리에테 호프만(폰 시라흐) = 히틀러의 개인 사진사의 딸로 아홉살 때부터 히틀러와 친밀하게 지내왔고, 이후 나치 청년단 지도자인 발두르 폰 시라흐와 결혼한 여성. 부부의 피로연이 히틀러의 집에서 열릴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음.

전쟁 중이던 어느날, 헨리에테는 베르크호프(히틀러의 집)에서 열린 모임에서 암스테르담에서 자신이 본 참혹한 광경에 대해 히틀러에게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히틀러는 지극히 냉혹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로부터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의 측근들은 그 가족에게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살 것을 권유했죠.

헨리에테는 암스테르담에서 유대인 여성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고 느꼈던 괴로움을 히틀러에게 토로하고 만다. “총통께서 그런 일들을 안다고 믿지는 않아요. 아무 힘도 없는 여자들을 붙잡아 한꺼번에 차에 몰아넣고 강제 수용소로 보냈어요. 그 여자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을 거예요...”

히틀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조용히 일어서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폰 시라흐 부인, 아주 감상적이군! 미워하는 법부터 배워야겠어. 네덜란드 유대인 여자들이 부인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어?” 헨리에테는 달아나듯 방에서 나왔고 속히 베르크호프를 떠나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들었다. 그 뒤로 헨리에테는 두 번 다시 히틀러를 보지 못했다.

사실 책에는 이 경우 외에도, 히틀러가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 정보, 불안들과 ‘조우’하는 장면이 몇번 더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그는 어린시절 '반유대주의'에 대해 비과학적이라며 고개를 젓기도 했었고3), <나의 투쟁>의 초고를 쓸 때 그의 오랜 동료의 사소한 비판들에 직면하기도 했었고4), 그보다 훨씬 사려깊고 학식이 뛰어난 경쟁자에 맞닥뜨리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히틀러의 반응은 동일했죠. 그는 언제나 집중적이었고, 한눈 팔지 않았고, 굳건했습니다.

저는 책을 덮으며 곰곰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많은 ‘조우’들 중 하나에라도, 히틀러가 산만한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 만약 그가 조금 더 산만한 독서를 했다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건에 귀를 기울였다면, 혹시 내가 틀리지 않았을까 한순간이라도 불안했다면, 구석의 한 문장이 자신의 믿음을 흔들게 하는 독서를 했다면 비참한 역사가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았을까?... 하고요.

지난 회차에서도 말했듯(필터버블), 사실 무엇을 보느냐보다는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를, 오늘 살펴본 '집중하는 보기'와 '산만한 보기'로 나누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마주하고서도 자신의 목적(반대 세력에 대한 증오)을 키우는 방식으로만, 땔감으로만 활용하고- 자신의 주장에 맞지 않는 단서들은 모조리 덜어내고 맙니다. 그런 '집중적인' 방식으로 그는 수많은 '정보'를 먹더라도 오직 증오를 키우는 방식으로, 자신의 목적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그 모든 것을 이용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과 믿음이 위태로워질지라도 일단 자신의 마음을 한켠에 둔채 - 산만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만약 그의 이야기가 내가 평생 지녀왔던 신념에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라도, 그 단서를 불쾌하다고 내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랜시간 고민하며, 만약 필요하다면 결국 자신을 바꾸어 냅니다. 이 때문에 산만한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불편한 독서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을 바꾸어내는 독서를 추구합니다.

그런 산만한 독서는 때론 비효율적이고, 모호하고, 자기확신적이지 못하고, 망설이고, 불편하고, 위태로워보이지만 결국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소박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원래부터 조금은 불편한 일이니까요.

1) 재밌는 건, 당시 수도자들이 경계한 건 '호소력 있는 책' 뿐이었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호소력이 없고 펴자 마자 졸려지기만 한 책이라면 산만해질 걱정을 할 일도 없겠죠.

2) 이 대목은 꽤 의미심장한데, 기본적으로 문학은 쓸모를 두고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학을 읽는다고 해서 자연히 반드시 타인의 삶에 공감을 하게 된다고 할 수는 없는데 괴벨스의 경우 히틀러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문학을 사랑했고, 실제 직접 소설, 희곡 등을 쓰기도 했던 문학청년이었다고 합니다(링크). 국내에 괴벨스가 젊은 시절 쓴 소설 한권이 번역되어 있긴 합니다만..(링크)

3) 이 책에 따르면, 의외로 히틀러는 어린 시절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에 대해 수동적인 거부감, 의구심을 가졌다고 하는데요(p.71). 하지만 이후 그의 젊은시절 멘토이자 후원자이며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자인 디트리히 에카르트(링크)를 만나며 본격적으로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4) 나치 공식 대변인이었던 하버드 출신의 에른스트 한프슈탱글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의 출간 전 초고를 읽고, 히틀러의 자기중심적인 '사소한 거짓말/기만'들을 여러차례 지적했는데 이후 히틀러는 한프슈탱글에게 원고를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2월의 해찰 피드 : #관심비즈니스 #재개봉열풍

2월 한 달간 SNS에서 특별히 이슈가 되었던 기사, 이슈가 된 사건 등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좋은 칼럼 등을 소개합니다.

#관심비즈니스

관심이 곧 돈이 되는 관심경제에서 가장 돈 벌이가 되는 것은 혐오를 조장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관계가 무엇이든 간에 일단 눈길을 끌어 수익을 내면 그만인 것이죠. 반면 이를 검증하고 분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숙고하는 콘텐츠는 눈길을 끌기가 어렵습니다.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왜곡된 콘텐츠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자정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의 시스템 차원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언론의 자성’ 그 이상이 필요하다

독서 시간: 약 5분 / 글자수 : 약 3000자

👤글 속 한문장

“연예인과 관련한 비윤리적인 보도를 두고 포털과 자율규제 기구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이버는 언론이 ‘인터넷 커뮤니티 받아쓰기’ 등 선정적인 저품질 기사를 쓸 경우 뉴스 조회수 수익을 줄이는 ‘NG팩터’를 2021년 3월 도입했다. 그러나 언론은 수익이 줄면 기사 개수를 더 늘리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18일 미디어오늘에 “매달 광고 수익 배분 과정에서 섹션 오분류, 가십성 기사 등 NG팩터를 적용하고, 개별 언론사와 수시로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스피의블라블라

지난 16일 배우 김새론이 사망했습니다. 음주운전 사건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왜곡되어 공격적인 방식으로 기사화되었고 그는 방송출연이 불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카페의 아르바이트까지 잘리면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런 반복되는 문제는 자극적인 보도에 실질적인 패널티를 주거나 퇴출하는 등 어떠한 규제도 부재하고, 클릭수가 곧 돈이 되는 생태계의 문제와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최근 구제역, 뻑가 등 사이버불링을 일삼는 '사이버레카' 유튜버들의 수익 환수 관련 문제도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겠죠.(링크)

극우유튜브 전성시대, 어떻게 대응할까

독서 시간: 약 12분 / 글자수 : 약 8500자

👤글 속 한문장

“사실 가장 근본적 문제는, 플랫폼이 더는 특별한 디지털 소통 방식을 위해 만들어지기보다는 그저 규모 경제의 발판으로만 수렴되는 트렌드다. 작년에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똥망화(enshittification)’라는 신조어가 유행한 바 있다. 규모 경제에 올라타기 위해 대량의 저품질 내용을 쏟아내고 알고리즘을 오남용하는 접근은, AI 시대가 좀 더 본격화하면 더 엉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굳이 다시 소개할 필요도 없이 다들 알고 있는 현상이다. 온라인 ‘플랫폼’들이 디지털 오정보와 그것을 양분으로 삼는 극우 콘텐츠의 온상으로 꼽히고 있다. 대다수 대형 플랫폼은 이런 상황으로부터 수익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무언가 조치를 안 할 수는 없는 상태에 놓여있곤 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슬로우뉴스가 미디어연구가 김낙호 교수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글입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으며, 매번 관련 문제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곤 하는 예방책에 대한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습니다.

플랫폼의 '똥망화'라는 신조어가 재밌는데요. 이는 AI 생성 slop의 증가로 인해 훨씬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slop의 문제와 혐오 콘텐츠의 문제는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양쪽 다 기본적으로 플랫폼-공중의 신뢰를 어기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플랫폼의 규모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단적으로, 동호회의 인원이 10명일 때는 욕설 금지, 과도한 친목 금지 등의 규칙을 정하기가 쉽지만, 동호회 인원이 10만명(!)이면 유명무실해질테니까요.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관리 인원도 늘리면 해결될 문제지만 그러면 수익이 안납니다.

레거시의 추억, 혹은 쓸모

독서 시간: 약 2분 / 글자수 : 약 800자

👤글 속 한문장

“원래 레거시는 법적으로 인정받은 유산을 뜻한다 [...] 유지보수비와 보안 취약성을 감수하면서 레거시 시스템을 남겨두는 것은 오랜 기간 검증된 안전성을 활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낡은 것이 지니는 가치와 쓸모를 한시적으로나마 존중하며 기술의 연속적 발전을 도모하는 셈이다. [...] 오래되고 안정적인 가치를 지키는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이 선동을 주도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미래에 남겨질 현재의 흔적이 심히 걱정스러운 나날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란 정보화시대 이전 과거로부터 계속 되어온 방송, 신문, 잡지, 라디오 등 전통매체를 뜻하는 단어인데요. 사실 이 단어가 아우르는 범위도, 정의도, 뜻도 다소 모호하다고 할 수있습니다. 미디어뿐 아니라, 대략 이미 시대에 뒤쳐진 것들을 지칭하려 할 때 레거시라는 단어를 붙여온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이 짧은 칼럼의 마지막 문장에 주목했습니다. legacy란 유산(遺産)이라는 뜻이고, 통상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것을 지칭할 때만 legacy라는 단어를 쓰지만 미래 시점에서의 현재(즉, 우리가 미래 세대에 물려줄만한 것) 역시 legacy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과연 우리는 후손에게 물려줄만한 - 가닿을만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가, 그리고 현시점에 그 생산자들을 충분히 발굴하고 독려하고 지원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조차도 '레거시스럽다'는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추가로 이런 의미에서라면 통칭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는 것 가운데서도 진정한 레거시 미디어의 의미를 지키고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러셀의 찻주전자’와 음모론

독서 시간: 약 4분 / 글자수 : 약 1600자

👤글 속 한문장

“1952년 버트런드 러셀은 지구와 화성 사이에 너무 작아 어떤 망원경으로도 결코 볼 수 없는 찻주전자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이런 찻주전자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반증하지 못했으니 이 찻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 1650년 올리버 크롬웰은 한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자비를 빌어 간청하건대 여러분이 틀렸을 가능성도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적었다 [...] 세상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구가 평평하다고 하는 사람 등 음모론자들을 아우르는 특징이 있을까요?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모 아니면 도'로 보고 -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놓고는 거기에 대해 명백하게 반박하지 못하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는 것이죠. 이와 관련된 비유 중 '러셀의 티팟문제Russell's teapot'(링크)가 있는데요. 지구와 화성 사이에 찻주전자가 타원궤도로 돌고 있다는 설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을 반증할 수 없기 때문에 옳다고 해선 안되고 그 증명의 책임은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본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얼핏 당연한 이야기처럼보이지만, 실은 유튜브에서 다양한 극단주의적 주장을 하는 이들은 이런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네가 100% 옳다는 증거가 있어? - 그렇지 않다면, 거봐 내 주장이 옳다). 문제는, 이처럼 한번 일단 기상천외한 서사가 만들어지고 나면 그 '재밌는 이야기'는 관심경제에서 지루한 논증에 비해 훨씬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이런 극단적인 주장에 대한 논의 및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겠죠.

#재개봉열풍

영화관에선 재개봉 영화가 선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약 15년전 이미 국내 개봉했던 <더폴> 감독판이 재개봉해 최근 관객 15만명을 돌파(링크)하며 이례적인 열풍을 일으켰는데요. 이에 타셈 싱 감독이 깜짝 놀라 직접 내한해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했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구명작들이 차례로 재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러브레터>는 올해 9번째 재개봉인데도 관객 10만명을 넘겼다고 하고요.

관객의 흥미를 끄는 참신한 신작이 나오지 않는 정체된 영화계에 대한 지적도 나오지만, 명작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재개봉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17년 전 영화에 10대 관객도 몰렸다

독서 시간: 약 7분 / 글자수 : 약 3400자

👤글 속 한문장

“지난 12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일일 박스오피스를 보면, 20위 안에 든 영화들 중 6개가 재개봉 영화다. 이날 재개봉한 ‘미드나잇 인 파리’(2011), ‘500일의 썸머’(2009), ‘원더’(2017)는 이미 과거 한두 차례 재개봉 했음에도 또 다시 순위권에 올랐다. 또 지난 연말부터 ‘재개봉의 기적’으로 떠오른 ‘더 폴: 디렉터스컷’(2006)은 이날 누적 관객 수가 12만4000여 명에 이르렀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재개봉 영화들이 선전했던 2024년에 이어 올해도 초반부터 재개봉 영화들의 선전이 돋보입니다. 특히 <더폴>의 감독은 지난 4일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넷 덕분에 이 영화가 새 생명을 얻은 것 같다"고 하며,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사랑해주어 마치 나의 아이가 생명을 얻은 것처럼 기쁘다고 했죠. 실제로 이번 <더폴> 흥행은 독특하게도, 통상 다른 재개봉 영화들에 비해 기존 팬덤이 존재하는 n회차 관람이 아니라 대부분 새로운 세대의 관객을 처음으로 만난 영화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대부분의 재개봉 영화들은 기존 감독이나 해당 작품에 대한 팬덤, 노스탤지어에 의존하는 부분도 있죠. 영화평론가들은 이런 재개봉 열풍에 대해 '일상'보다는 '이벤트'가 된 영화관 방문의 특징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24년 히트작 10개 중 9 작품이 시퀄

영문(NYT)

👤글 속 한문장

“

그 어느 때보다 영화 관람객들은 보험을 원한다. 영화관에 직접 가서 영화를 보는 활동이 과연 나의 시간과 돈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을까?

티켓 가격이 올랐다. 팝콘, 주차, 베이비시터 비용을 더하면 - 어머, 오리지널 영화에 도전하지 말자: "소닉 3" 티켓 두 장 주세요. 적어도 2편은 재밌었으니까. 그 영화에서 뭘 기대할 수 있을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훌륭한 리뷰를 받은 오리지널 작품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2024년 북미지역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히트했던 작품 상위 10작품 중 9작품이 무려 기존 인기 시리즈의 후속작(시퀄)이었다고 합니다. 인사이드아웃2, 슈퍼배드4, 데드풀과 울버린 등이죠. 2025년에도 많은 기존 작품의 리메이크 영화와 후속작의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OTT의 보편화 및 티켓가격 부담 증가 등으로 인해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진단이 나온다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단순히 기대치가 높다기보다는, 손해보지 않는, '예측 가능한 가성비' 소비를 영화에서도 원하는 경향이 높다는 진단도 있죠. 실제 참신하고 작품성있는 작품이 나오더라도 '가성비 소비'를 원하는 관람객들에게 환영받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자기복제식 안일한 기획이 이어지다보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참신한 시도가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비단 영화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했습니다.

💌2월의 김스피 책장 : 작은 책꽂이

매달 마지막주 레터에 한 달 간 출간된 신간 위주로, 제가 주목해 작은 책꽂이에 꽂아둔 책들을 간단히 소개해보려 합니다. 언젠가는 인스피아 레터에서 다루게 될지도요. 다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일부만 읽은 책들도 있습니다.

괄호 안에는 온라인 서점으로 연결되는 링크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애니 제이콥슨, 강동혁 옮김, <24분>, 문학동네, 2025 (링크)

-“핵무기를 가진 허무주의적 광인 한 명만 있으면 승자 없는 핵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 미국의 열핵무기 설계자 리처드 가윈은 말했습니다.

종종 디스토피아 소설, 영화에서 세계를 처참하게 파괴할 '버튼'이 등장하곤 하는데, 과연 핵 미사일이 진짜로 발사되면 세계는 어떻게될까요?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약 15년간 수백명의 관계자들을 취재하여 만약 핵 미사일이 발사되면 실제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그 여파는 어떻게될지를 추적합니다.

📚김혜원, <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 흐름출판, 2025 (링크)

-책의 부제는 '고립되고 은둔한 이들과 나눈 10년의 대화'입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은둔형 외톨이들을 상담해온 상담자로서 이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들을 어떻게 주변에서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결국 은둔형 외톨이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여러차례 들었습니다. 조금 실수하더라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더라도 괜찮은 세상이라면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연합학술대회 추진위원회 엮음, <프랑크푸르트학파 100년>, 사월의책, 2025 (링크)

-왜 사람들은 파시즘에 끌릴까요?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요? 인공지능 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벤야민,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 등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은 수십년~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 유효한 도구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1923년 이후 100년을 넘게 명맥을 이어온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의 비판이론을 우리나라 학자 스물두명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살펴본 책입니다.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지만 비판이론, 그리고 비판이론의 현재적 적용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두고 보실만한 좋은 안내서라 생각합니다.

📚정성일, <휴일 : KOFA 영화비평 총서> 외, 앨피, 2025 (시리즈 링크)

-한국영상자료원KOFA의 기획으로 발간을 시작한 총서입니다. 정성일 평론가 외에 다양한 영화전문가들이 한국 영화의 역사에서 기념하고 주목할만한 명작들을 한 작품씩 살펴봅니다. 총서의 시작으로 “소수만이 관람했지만 영화를 본 사람은 놀라움에 탄식한다는” 숨겨진 걸작 <휴일>(이만희 감독, 1968)과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 2003) <하녀>(김기영 감독, 1960) <최후의 증인>(이두용 감독, 1980) 등 총 네 작품을 다루었습니다.

🎈알림: 플랫5주년 생일카페🎉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