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자성어는 여호모피(與虎謨皮. 더불어 여, 범 호, 꾀할 모, 가죽 피)다. 앞 두 글자 ‘여호’는 ‘호랑이와 더불어’란 뜻이다. ‘모피’는 여기에서 ‘가죽 벗기는 일에 대해 상의하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호랑이 가죽 벗기는 일을 호랑이와 의논하다, 즉 피해를 보게 될 당사자와 어떤 일을 의논하긴 꽤나 어렵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송(宋)나라 시기에 편찬된 백과전서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실려있는 우화에서 유래했다.

노(魯)나라 정치가 겸 역사가였던 좌구명(左丘明)은 대략 공자(孔子. 기원전 551~ 479)와 동시대 인물이다. 공자가 저술한 역사서 ‘춘추(春秋)’는 간결한 문체로 쓰여 있다. 공자 사후에 좌구명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저술한다. ‘춘추’에 설명을 추가해 후학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다. 좌구명이 공자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선구적인 이 두 역사가 관련 일화는 전해지고 있다.
하루는 노나라를 통치하던 정공(定公)이 ‘공자를 높은 벼슬에 한번 앉혀보면 어떨까?’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 즈음 공자의 명성은 이미 이웃 나라에까지 자자했다. 정공이 신임하던 좌구명을 불러 질문했다. “공자를 사도(司徒) 직책에 임명하고 싶은데요. 삼환(三桓)과 이 문제를 상의해볼까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당시 노나라 정치는 맹손씨, 숙손씨, 계손씨, 이 세 가문, 즉 삼환이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좌구명이 대답한다. “공자의 정치 사상과 삼환의 입장은 많이 다릅니다. 삼환은 그 인사(人事)에 당연히 반대할 것입니다. 공자는 권력을 나누자고 주장하고, 그들은 독점하길 원하는데 어떻게 찬성할 수 있겠습니까?”
좌구명은 정공에게 여우와 양이 등장하는 우화도 함께 들려준다. “옛날 어떤 이가 여우 가죽옷과 맛있는 음식을 무척 좋아했답니다. 어느 날, 그가 여우를 찾아가 아주 특별한 가죽옷을 만들려 하니, 혹시 가죽을 제공해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는데요. 여우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숲으로 달아났답니다.” 그가 양고기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하러 양들에게 갔지만, 양들이 모두 숨어버린 이야기도 들려준다.
좌구명의 이 인상적인 조언을 들은 후, 정공은 지체없이 공자를 불러 벼슬을 내린다. 물론 삼환과 상의하지 않은 특단의 인사였다.

사실, 좌구명과 공자의 중년기에 노나라 정치는 매우 불안정했다. 특히 계손씨 가문의 세력이 여러 문제의 화근이었다. 노나라 사람들이 계손씨 가문의 리더를 나라의 주인으로 여기며 처신할 정도였다. 그런데 계손씨 가문에서 일하던 양호(陽虎)라는 인물이 은밀히 힘을 키우더니, 섬기던 리더를 감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이 이렇게 급박해지자 서로 경쟁하던 삼환이 일치단결해 양호 세력을 제압한다.
정공은 이 어수선한 권력투쟁 와중에 공자 발탁이라는 묘수를 떠올렸다. 나름의 뚝심을 갖고 삼환을 견제해줄 누군가를 그가 간절히 원한 것이다. 갑자기 중용된 공자는 차츰 승진해 대사구(大司寇) 직책에 오른다. ‘대사구’라면 요즘 기준으론 사법 행정을 책임지는 상당히 중요한 자리다. 그러나 공자와 정공이 시도한 이 정치 개혁은 삼환 세력에 의해 결국 가로막혔다. 이후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동시대인이었던 공자뿐 아니라, 후배 역사가 사마천도 좌구명을 군자(君子) 풍모를 지닌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 좌구명은 ‘국어(國語)’의 저자로도 알려지고 있다. ‘국어’를 저술할 즈음, 그는 이미 앞을 볼 수 없었다. 실명(失明)했음에도, 문장들에 생동감이 넘쳐난다. ‘국어’엔 주(周), 노, 제, 진(晉), 정(鄭), 초(楚), 오(吳), 월(越) 등 춘추시대 8개국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앞 우화에서 유래한 사자성어, ‘여호모피’의 두 번째 글자 ‘호’는 본래 여우였다. ‘호’가 차츰 변해 지금은 호랑이로 쓰인다. 상대방이 약한 여우든, 힘 센 호랑이든 상관없다. 어떤 일을 의논할 때, 혹시 그가 이해 당사자는 아닌가를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라면, 그가 상식 밖의 조언이나 의견을 쏟아낼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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