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커진 양육의 기회비용…인구 절벽 부른다

2026-01-02

한국에서는 합계 출산율 0.8명 ‘돌파’가 뉴스가 된다. 출생률이 워낙 극적으로 급감하다 보니 우리만 인구 위기를 겪고 있는 듯 느껴지지만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대국 중국도 출산율이 1명대에 머물고 있고 미국 역시 대체 출산율인 2.1명에 크게 못 미친다. 각종 인구 추계 연구에 따르면 현재 약 82억 명인 세계 인구는 이르면 2060년, 늦어도 2080년 무렵 사상 최고치인 100억 명에 도달한 뒤 급격한 감소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례 없는 ‘인구 대감소’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국의 두 경제학자는 신간 ‘인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저자 중 한 명인 딘 스피어스는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경제학과 종신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마이클 제루소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며 보건·인구 분야 정책 자문을 맡았던 인물이다. 두 사람은 경제학자 특유의 실증적 분석을 통해 각종 통념을 검증하고 원인을 짚으며 해법을 모색한다.

저자들은 출생률 하락을 기후 위기와 맞먹는 전 인류·전 지구적 핵심 리스크로 규정한다. 저출생은 단순한 사회 문제나 특정 국가의 정책 실패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흔드는 구조적 위기라는 진단이다. 이들은 금리 결정이나 경기 침체 대응은 인구 문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단순한 과제라고 말한다. 그만큼 저출생은 인류에게 닥친 ‘회색 코뿔소’와 같은 난제라는 뜻이다. 눈앞에 보이지만 대응이 쉽지 않고 방치할수록 파급력이 커지는 위험이다.

인구 감소는 인류사적 관점에서 매우 큰 변화다. 흑사병이나 대규모 전쟁 같은 재난이 아닌 상황에서 인류의 숫자가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장면을 처음으로 목도하게 되는 셈이다. 그 변화의 영향은 대체로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년간 이어진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인류 진보의 토대였다. 저자들의 시각에서 더 많은 인구는 곧 더 큰 수요와 시장을 뜻한다. 수요의 확장은 분업과 교역을 촉진하고 기술 혁신의 속도를 끌어올린다. 의학적 혁신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mRNA 백신이 극히 짧은 시간 안에 개발될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와 다름이 없었다. 인구의 대감소는 인류 번영의 역사를 후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왜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점점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할까.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해법도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저자들은 저출생을 둘러싼 통념을 하나씩 검증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과도한 경쟁, 집값,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 노동, 높은 양육비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나라에서 출생률이 높아야 한다는 가설은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이다. 복지와 성평등 정책으로 ‘육아 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 역시 최근 출산율 하락으로 고심하고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가 국내총생산(GDP)에서 가족 복지에 지출하는 비율은 미국의 두 배에 가깝지만 출생률은 오히려 더 낮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은 인도에서도 일을 하지 않는 여성들 사이에서조차 출산율이 과거보다 떨어지고 있다.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만으로 저출생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핵심 요인은 ‘부모 노릇의 기회비용’이 커졌다는 점이다. 기회비용은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 이는 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커리어, 시간, 여가, 심지어 고요한 일상까지도 기회비용이 된다. 기술과 문화의 발전으로 삶의 선택지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시대에 출산과 양육이 요구하는 기회비용은 급격히 커졌다.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질수록 새로운 생명을 책임지는 데 드는 부담이 커지는 역설에 인류가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최근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인 현금 지원 중심의 출산 장려 정책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갈수록 커지는 부모 노릇의 기회비용을 보조금으로 상쇄하는 데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유니세프 역시 자녀 세액 공제나 출산 보너스 같은 각종 지원이 장기적으로 출산율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저출생 해법은 기후 대책만큼이나 전방위적이며 간단하지 않다. 정책, 기술, 사회 전반의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육이 사회적·문화적·경제적·의료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돼 고된 싸움이 아니라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인구 감소를 늦출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저출생 문제를 전 세계적 관점에서 조망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흥미롭다. 혹시 미국의 경제학자들에게 뾰족한 해법이 있을까 기대하게 되지만 결론은 담담하다.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전방위적인 노력을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답이 없다는 것이다. 404쪽.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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